“미스 김 참 섹시하지 않디?” “그렇지? 쭉쭉빵빵한 게…”
퇴근길, 남자 동료들끼리 술 한 잔 걸치면 으레 나올 법한 이런 ‘므흣한(흐믓한)’ 대화는 죄가 될까?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해온 남성이라면 앞으로 입조심을 해야 한다. 남자 직장인들만 모인 자리에서라도 여직원들에 대한 성적인 ‘뒷담화’를 나누는 것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3일 직장 상사가 자신을 놓고 성적인 발언을 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며 A씨(20대 여성)가 낸 진정에 대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이라도 피해자가 받은 심적 고통은 직접 들은 것과 다를 게 없다”며 해당 상사에게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회사에 권고했다. A씨는 자신과 관련, 직장 상사가 남자 직원들에게 ‘음료에 약을 타서 어떻게 해보지 그랬느냐’는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을 알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 심의는 성희롱의 ‘간접성’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직장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남자들은 대체로 “너무한 처사”라고 반발한 반면 여자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외식업체 박모(33) 대리는 “술자리에서 농담도 못하냐”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농담으로 ‘뒷담화’를 하다 보면 농도가 좀 짙어 질 수도 있는데 그것까지 문제 삼으면 삭막해서 어떻게 사냐”며 “당사자가 있는 자리라면 몰라도 제3자들끼리 하는 대화마저 성희롱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김모(33ㆍ중소기업 과장)씨는 “그런 잣대라면 술자리에서 ‘사장을 때려죽이고 싶다’고 말한 것을 사장이 들으면 협박죄가 될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발언자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면 소모적인 분란만 커질 수 있다”며 “괜히 잘못 전달된 말을 듣고 엉뚱한 사람을 ‘무고’하는 일만 많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증권회사 직원 임모(29)씨는 “술자리뿐 아니라 업무시간에도 은밀한 성희롱이 이뤄지고 있다”며 “메신저로 남자 직원들끼리 대화하다가 키득거리며 음흉한 눈빛을 보낼 때면 무슨 말이 오가는지 뻔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한 번은 인사과에서 나를 두고 ‘이 직원은 왜 생리휴가 날짜가 들쭉날쭉하냐’는 말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화끈거린 적도 있다”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성희롱이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여직원을 두고 남자들끼리 성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사실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성희롱의 유형”이라며 “인권위의 조치가 직장 내의 보이지 않는 성희롱을 없애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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