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정부 차원의 개헌 추진기구 구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제기한 개헌론이 정치적 논란을 빚는 와중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개헌에 나선다는 뜻이다.
정부가 그런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총리의 인식이 걱정스러움을 넘어 위험해 보인다. 정부는 대통령을 받들어 일하는 헌법적 중추기관이지만 대통령의 정치를 총대를 메고 이행하는 기관은 아니다. 대통령은 상황이나 그의 뜻에 따라 정치적 존재일 수 있으나 총리는 아니다. 정부는 중립적이어야 하고 총리는 정부의 행정적 대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개헌론은 정치적이다 못해 정략적이라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개헌은 이미 정치적 이슈가 돼 있다. 부적절한 시기에 대통령이 제안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누차 지적한 바 있다.
자연인으로서의 총리가 이에 동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상을 뒷받침할 기구를 정부 기구로 만들라는 지시는 월권이자 권한 남용이다. 그 기구는 정부인력으로 구성되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될 것이다.
정부가 개헌을 옹호하고 추진할 기구를 구성하는 데 세금을 쓰겠다면 반대하는 야당이나 단체에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지원해야 마땅하다. 단순 논리로만 봐도 이치는 그렇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선거쟁점이 될 수 있는 개헌에 내각이 동원되는 것은 정치 중립을 훼손하는 처사"라는 반응이다. 당연하다. 한 총리는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중립 내각의 필요성이 거론돼온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개헌은 국민적 관심사이고, 다수 국민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재경부를 비롯한 경제부처의 개헌 지원 움직임이 눈총을 받고 있는 터에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한 총리는 밝혀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총리나 정부의 업역(業域)에 대한 심각한 착오다.
아니라면 피동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했다는 점에서 총리의 직무를 모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리가 아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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