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정부의 협상전략을 담은 비공개 문건의 유출 사고가 정부와 국회의 책임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협상 자체에 국가적 에너지와 지혜를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상대방에게 협상전략을 다 드러내고 그 책임공방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미국에는 과연 어떻게 비칠까.
경위를 따지기에 앞서 중요한 국익이 걸린 문건을 누군가 빼돌려 공개되도록 한 사실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범죄적 행위다. 문건에는 무역구제를 다른 분야 협상에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과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섬유와 금융서비스 분야의 양보 범위 등 민감한 협상전략이 들어 있다.
이제 상대방에게 패를 모두 보여준 셈이니 가장 결정적인 국면에 진입한 협상에서 우리 입장이 더욱 불리하게 됐다. 비공개 한미 FTA 문서가 국회를 통해 유출된 일은 비일비재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유출 당사자를 밝혀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허술한 관리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외교통상부는 13일 국회 FTA 특위회의에서 문건 30부를 의원들에게 배포했는데 이 중 한 부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배포 시점이 비공개 회의에 들어가기 전 공개회의 와중이었다는 점이다. 취재진, 의원 보좌관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문건을 배포했다면 이미 대외비로서의 효력은 사라진 것이다.
보안관리도 엉망이었다. 문서에는 연필로 대외비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사라진 문건은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자리를 비운 가운데 이 의원 자리에 놓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문서에 더욱 신경을 썼어야 마땅하다. 유출 이후의 대응도 과연 이 문서가 비밀문건인지를 의심케 한다. 외교부는 이 의원에게 문서 유출여부에 대해 문의했을 뿐 문건이 18일 언론에 공개될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보안이 필요한 문서들이 이렇게 느슨하게 유포ㆍ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른 국가 기밀의 관리실태는 어떨지 정말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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