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지스페이스의 ‘이머징(Emerging)’ 전은 신진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기획전이다. 7회째인 올해는 장유정과 윤영혜를 선정, 전시 중이다.
장유정의 작품은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린다. 의자나 사다리, 탁자와 컵 등 익숙한 정물을 사진으로 찍어 캔버스에 올렸는데, 자세히 보면 그림자가 지나치게 짙다. 이 그림자는 정물이 놓인 실제 평면이나 벽에 그려서 정물과 함께 찍은 것이다. 가짜 그림자를 거느린 실제 정물 사진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있다. 가짜 그림자를 진짜처럼 보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과 시각이 상상력과 합작한 결과다. 텅 빈 실내를 사진으로 찍고 같은 공간에 그 사진을 걸고 다시 찍어 두 장을 나란히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전시장 한쪽에 ‘그림처럼 보이는’ 창고를 설치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천정에 매단 것도 실재와 환영의 간격을 무너뜨린다.
윤영혜는 음식 대신 꽃을 놓은 식탁을 극사실로 그렸다. 유리 접시에 얌전하게 담긴 장미꽃, 그 양 옆에서 꽃을 찌를듯이 죄어드는 포크와 나이프를 각각 한 폭씩, 커다란 세 폭 그림으로 설치한 작품은 욕망과 그것을 제어하는 사회적 규칙에 대한 암시다. 대충 보면 무척 아름답고 장식적인 그림일 뿐이지만, 꽃을 위협하듯 반짝이는 나이프와 포크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극사실 기법이 그런 긴장감을 더욱 배가시킨다.
실재와 환영, 사회적 현실과 극사실을 다루는 두 작가의 태도는, 철학적으로 보자면 인식론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거나 단순히 어떤 느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학의 영토로 진입 중이다. 눈으로 보던 것은 이제 뇌로 생각하는 것이 됐다. 전시는 3월 11일까지. (02)3142-1693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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