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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헌재, 정치게임의 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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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헌재, 정치게임의 무대로

입력
2007.01.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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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출범 당시 헌법재판소가 현재와 같은 권한과 기능을 행사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87년 6ㆍ29 선언 후 정치적 타협의 부산물로 탄생한 헌재에 오늘날 '제왕적 사법부'라는 별칭이 붙게 될 줄은 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전의 정부에서 유명무실하게 기능한 헌법위원회의 재판이 될 것이라든가, 대법원의 사생아로서 반쪽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헌재 소장도 지금은 3부 요인과 동등한 예우를 받고 있지만 초기엔 홀대론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89년 현충일 행사에 참석하려던 조규광 초대 소장이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아 전날 따로 국립묘지를 참배했다가 정부 지침이 바뀌면서 당일 행사에도 참석, 두 번이나 헌화하게 된 일화는 초라했던 헌재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우려와 홀대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헌재가 헌법최고기관의 제자리를 잡아가게 하는 양분이 됐다. 대응 기관들의 느슨한 견제와 감시 덕분에 헌재는 헌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정치권력이나 행정력과의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국회는 헌법재판관 3명을 추천하는 것으로 헌재를 적당히 통제하는 데 만족했고, 대법원은 헌법 해석 기능을 넘겨준 것이 서운했지만 헌재의 본령까지 건드리지는 않았다. 행정부도 하부 집행기구가 없는 헌재의 영향력을 코방귀쳤다.

헌재에 관대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셋방살이를 하던 헌재를 취재한 기자들은 "죽치고 앉아 담합할" 기자실은 갖지 못했지만 신생아 헌재가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때리기'는 가급적 자제한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헌재의 막강한 힘을 예리하게 간파한 쪽은 일반 국민이었다. 경ㆍ검에 무시당하고 행정기관에서 치인 국민들은 신문고를 두드리듯 헌법소원을 냄으로써 억울함을 풀려고 했다. 영리한 재판관들은 다수의 소원을 인용하고 간간히 예민한 사건들을 재단함으로써 헌재의 영향력을 키워갔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이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소송은 헌재가 국민의 일상사뿐 아니라 정치권까지 견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정점의 사건이었다.

따지고 보면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파동은 정치권력이 헌재의 권력을 주목한 데 따른 결과였다. 대통령은 헌재 소장을 통해 퇴임 후에도 간접적 영향력을 이어가려 했고, 이를 간파한 야당은 전 재판관의 소장 임명을 결사 반대했다. 사표를 낸 전 재판관의 소장 임명이 가능한가라는 법리 논쟁은 헌재와 정치권의 암투를 가리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전씨의 낙마는 정치권과의 대결에서 헌재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헌재가 정치 권력의 견제를 정면으로 받을 정도로 성장했음을 확인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22일 공식 취임한 이강국 소장이 이끌 제4기 헌재의 현실 진단은 정확히 이 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헌재는 더 이상 정치권력의 견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는 이 소장이 정치적 외풍의 한가운데로 옮겨진 헌재를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헌재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자각한 정치권은 헌재의'권력'을 더 세차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다.

이 점을 의식한 듯 이 소장도 취임사에서 "헌재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헌재가 최고의 헌법지기로 자라느냐, 아니면 정치권의 풍향에 휩쓸릴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가 기댈 곳은 헌법과 국민뿐이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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