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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4) ㈜삼포통상 1,000원짜리 액세서리로 4,600만弗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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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4) ㈜삼포통상 1,000원짜리 액세서리로 4,600만弗 수출

입력
2007.01.23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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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었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 위치한 패션 액세서리 전문업체 ㈜삼포통상 본사는 5층짜리 건물에서 겨우 2개 층만 쓰고 있었다.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수도 고작 15명. 지난해 3,000만불 수출탑을 받은 탄탄한 중소기업이라고 하기엔 너무 영세해 보였다. 업무부 박종범 차장은 “90년대 말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긴 이후 한국에는 최소 관리인력만 남아있다”며 “대신 중국 생산기지에는 총 4개 공장에 2,000여명의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포통상은 1987년 설립 이후 20년간 패션 액세서리만 생산해온 ‘전문 기업’이다. 주로 해외 유명 유통업체나 패션브랜드로부터 흔히들 ‘이미테이션 쥬어리’라고 불리는 액세서리를 주문받아 수출하고 있다.

대표적 영세산업으로 분류되는 이 업계에서 ㈜삼포통상은 경이로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99년 수출액 50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2000년 1,000만달러, 2004년 2,300만달러, 2005년 3,700만달러에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4,600만달러를 돌파하며 매년 20% 이상의 고속 성장률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1년에 이 정도 수출하는 국내 기업은 많다. 하지만 다른 중후장대형 제품이 아닌, 작은 엑세서리를 이 정도 파는 기업은 유일무이하다. 액세서리 한 개 당 수출단가가 단돈 1,000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삼포통상의 수출역량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가 이 같은 발군의 수출역량을 갖추게 된 것은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린 창업자 박재홍 대표이사의 역할이 컸다. 박 대표는 “수백 개에 달하는 국내 업체들과 제살 깎아먹기 식의 가격 경쟁을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해외 시장을 개척해왔다”며 “그 결과 현재 우리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수출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작년에는 상도 많이 받았다. ㈜삼포통상은 작년 11월 무역의 날을 기념해 정부로부터 ‘3,000만불 수출의 탑’을 받았으며, 박 대표는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산업자원부장관 표창과 한국일보사가 선정한 ‘2006 한국 최고의 리더 대상’도 수상했다.

㈜삼포통상의 성장원동력은 연구개발(R&D)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액세서리 업체가 무슨 R&D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중공업이든 경공업이든 R&D는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이다.

㈜삼포통상의 R&D는 바로 디자인 개발이다. 10명으로 시작한 초창기부터 디자인 개발인력은 업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왔다. 경쟁업체가 2,3명의 디자인 개발인력을 보유하면, ㈜삼포통상은 6,7명으로 늘리는 식이었다.

지금도 2,000여명의 전체 직원 중 디자인 개발인력은 230여명에 달한다. 어지간한 동종업체의 전체 생산인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중국인 직원들을 뺀 한국 직원의 40% 이상이 디자인 개발인력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 디자인 개발 인력들이 만들어내는 아이템은 한 달에 수천가지가 넘는다.

박종범 차장은 “이미테이션 쥬어리처럼 저렴한 품목이라고 해서 생산공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큰 오해”라며 “미국부터 남미, 중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에 제품을 팔기 위해서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제품들을 디자인할 수 있는 창의적 역량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디자인의 힘은 다품종 소량생산이 일반적인 이 업계에서 ‘대박상품’까지 만들어 냈다. 2004년 러시아 시장에 처음 수출한 액세서리 세트(Extraordinary Giftset)는 단일 품종으로는 최다인 200만개(30억원 상당)가 팔렸다. 업계 평균으로 한 품종당 판매량이 적게는 수백개, 많아도 1만개 정도임을 고려할 때 대단한 매출이다. 이 상품을 계기로 ㈜삼포통상은 동유럽 시장에서도 수없이 러브콜을 받았다.

㈜삼포통상의 올해 수출목표는 6,000만 달러. 나아가 2010년까지는 수출액 1억불의 금자탑을 세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큰 과제는 바로 시장다변화. 남미ㆍ중동ㆍ아시아 시장에 대한 수출을 대폭 늘려서 현재 80~90%에 달하는 미국ㆍ유럽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저가, 저품질, 영세함으로 대표되던 액세서리 산업을 한국의 대표적인 수출산업의 반열에 올려놓을 ㈜삼포통상의 활약이 기대된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 ㈜삼포통상 박재홍 대표이사

㈜삼포통상 박재홍 대표이사와 인터뷰 약속을 잡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수출상담과 중국지사 관리 때문에 일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귀국 날짜를 겨우 맞춰 잡은 인터뷰 다음날 그는 다시 중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상식’을 회사 경영의 화두로 삼는다고 했다. 그는 “상식은 따라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깨부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액세서리=싸구려’라는 기존 업계의 상식은 깬 대신, ‘투자가 선행돼야 수익도 낼 수있다’는 일반적 경영 상식을 충실히 따랐기에 지금의 ㈜삼포통상이 있게 됐다는 것이다.

1980~90년대 국내 패션 액세서리 업계는 현재의 중국처럼 가격경쟁력만을 내세웠으나, 박 대표는 가격만으로 경쟁할 수 없을 때가 곧 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박 대표는 “경쟁 업체는 가격을 제1순위로 보고 생산비용을 낮추는 데에만 골몰했으나, 우리는 품질에 우선순위를 두고 그에 맞게 가격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쟁업체가 저가 품목 생산공장만을 건설하고 안주한 반면, ㈜삼포통상은 저가부터 고가 라인까지 생산해낼 수 있는 4개의 공장을 중국에 건립해 고객의 다양한 품질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그는 “많은 업체들이 인건비, 교육비 등을 경비로 생각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삼포통상은 지난 99년 중국 청도에 제1공장을 건립할 당시 업계 최초로 직원 기숙사를 함께 지어 화제가 됐다. 박 대표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돈 낭비라고 우려했지만, 기숙사 건립을 통해 우수 인력 확보가 용이해졌고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늘어나면서 숙련공도 많아져 결과적으로 회사 경쟁력에 결정적인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삼포통상의 물건을 살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고객만을 대상으로 거래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박 대표는 “고객을 고를 때는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거래를 거절한 고객도 많다”며 “고객은 그때 물건을 팔고 말 소비자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 성장할 파트너이기 때문”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고객을 결정할 때 항상 직접 그 회사를 방문해 가치를 직접 확인한다. 이 같은 원칙을 준수한 결과 ㈜삼포통상은 경쟁사들이 갖고 싶어 하는 대다수의 우량 고객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박 대표는 ㈜삼포통상의 주문자상표부착(OEM) 제품이 다른 외국 유명 브랜를 달고 국내에 역수입돼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5년 뒤에는 명품이나 외제 등 겉모양보다는 제품 자체의 가치를 평가해줄 때가 올 것”이라며 “그때에는 꼭 자체 브랜드로 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준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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