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측의 협상전략을 담은 대외비 보고서가 유출되면서 6차 협상까지 마무리 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협상 전략 노출에 따른 협상력 저하가 불가피해졌고 유출 경로를 둘러싼 국회와 정부간 갈등, FTA 찬반세력간 국론분열이 전면화할 조짐이기 때문이다.
협상력 저하 불가피
최근 일부 언론에 유출돼 보도된 정부의 국회 제출 비공개 보고서는 무역구제 분야(반덤핑 제도 개선)와 금융 분야 16개 쟁점에 대한 정부의 협상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협상과정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항목’과 ‘끝까지 지켜야 할 항목’ 등이 소개돼 있는 것. 보고서를 입수한 한 언론은 무역구제 분야의 경우 ‘관심사항 반영이 어려울 경우에도 여타 분야 협상에 활용하기 위해 미국 쪽을 계속 압박한다’는 보고서 내용을 인용해 “정부가 무역구제 분야의 요구사항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를 얻기 위한 협상카드로 쓰기로 했다”고 공개했다.
또 금융분야에서는 “정부가 국내 금융 정보를 국외 본점에서도 위탁 처리할 수 있게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허용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우리 협상단의 ‘주고받기’ 전략이 노출된 셈이다.
정부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마지노선뿐 아니라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어떤 카드를 순차적으로 내보일 지에 대한 전략이 그대로 노출됐다”며 “이 같은 전략을 수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협상력에서 마이너스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무역구제를 자동차와 의약품과 연계하려는 우리 협상단의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FTA 찬반세력 갈등 전면화 조짐
이번 보고서 유출이 FTA 반대세력에 의해 고의적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대두하면서 FTA 찬반세력간 갈등도 첨예해지고 있다. FTA 체결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이경태 원장은 2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연개소문의 장남으로 아우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뒤 당나라에 항복하고 신라 등과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킨 남생의 사례를 들면서 “한미 FTA 협상에서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고서 유출의 진원지로 FTA 반대세력을 지목하면서 사실상 ‘반 애국적 행위’라고 강도 높게 지적한 것이다.
반면 FTA에 반대하는 한 국회의원측은 “협상과정에서 입장이 곤란해진 정부가 협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유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또 지난 13일 특위 의원들에게 배포했던 문건 1부가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이날 밝혀졌지만, 국회 특위 위원들은 “국회에서 유출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정부 유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회수되지 않은 보고서가 모 국회의원용으로 배포됐으나, 해당 의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참석자가 문건을 유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유출 책임을 놓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FTA를 둘러싼 정부와 국회, FTA 찬반세력의 대립이 더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정부의 FTA 협상 탄력 역시 급격히 저하할 수밖에 없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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