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국 지음 / 이학사 발행ㆍ294쪽ㆍ1만6,000원
쓴 웃음을 머금은 채 낡은 코트 자락 휘날리며 안개 속으로 표표히 사라지는 사나이의 뒷모습. 범인(凡人)들에게 각인된 ‘아나키스트’의 이미지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어디 범인들뿐인가. 아나키즘은 좌우 모두,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테러리즘 혹은 몽상주의, 소부르주아적 반동주의라는 비난을 받았고, 실제 역사에서도 ‘실패한 꿈’으로 사라져갔다.
아나키스트들을 한껏 비웃던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폭주하던 자본주의도 자기모순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는 지금, 아나키즘의 부활을 외치는 무리가 있다. ‘한국의 2세대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며 그 선봉에 선 김성국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그는 “자본주의적 경쟁 체제 대신 상호부조의 공동체를, 직업혁명가 주도의 권위주의적 계급독재 대신 민중과 시민이 주인되는 자치사회를, 폭력과 억압에 기반한 국가 지배 대신 지역 단위의 소규모 연합사회(코뮨)을 추구하는 아나키즘”이야말로 21세기를 위한 시대적 좌표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김 교수는 책에서 한국의 1세대 아나키스트 5명의 삶과 사상에 천착하며 한국적 아나키즘 부활의 첫 걸음을 뗀다. 그는 신채호의 사상을 민족주의와 아나키즘의 ‘창조적’ 결합으로 추앙하고, 시종일관 테러리스트였던 유자명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창조적 파괴자’로 추켜세우며, 박열이 보여준 허무주의적 경향을 현실도피가 아닌 ‘저항적 허무주의’로 재정립한다. 또 광복 후 독립노동당 설립을 주도한 유림은 무정부주의를 넘어 세계 아나키즘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로, 1세대 아나키스트의 마지막 주자인 하기락은 ‘자주인(自主人) 사상’을 통해 아나키즘 대중화의 씨를 뿌린 선구자로 그려진다.
그 주장에 모두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아나키즘의 지평을 넓혀 신사회운동의 실용적 모델을 제시하려는 노력에는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저자가 이 책에 이어 3부작으로 엮어낼 <아나키스트 한국사회론> <해방적 자유: 탈근대 아나키스트 사회이론> 이 기다려진다. 해방적> 아나키스트>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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