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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프리가 만난 사람 - '백남준 1주기 추모 설치전' 디자이너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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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프리가 만난 사람 - '백남준 1주기 추모 설치전' 디자이너 이지영

입력
2007.01.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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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 꽃상여는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산 자들의 간절한 기원을 상징해요. 한복치마로 만든 수많은 꽃들이 전통문화를 사랑했던 한 천재 예술가에게 바치는 사모의 마음을 표현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한복디자이너 이지영(41)씨가 고 백남준 추모 설치전 ‘백남준, 꽃상여 타고 다시 떠나다’를 29일부터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갖는다. 비디오아트의 대가인 고인의 타계 1주기를 맞아 한 달 반 남짓 펼쳐지는 대규모 추모제 행사의 하나다. 이씨는 “얼떨결에 너무 큰 작업을 맡아 송구하고 영광스럽다”면서도 “이번 전시를 한복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 옷도 충분히 조형적인 멋과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전시는 네모난 중정을 에워싸며 나선형으로 지어진 쌈지길 하늘공원에 설치된다. 하늘을 향해 뻥 뚫린 공간에 지상에서 올려다보면 대형 꽃들이 떠있는 형태다. 꽃상여가 색색의 종이꽃으로 장식해 만드는 반면 천재 예술가를 위한 꽃상여는 노랑 빨강 파랑 등 색색의 7겹 모시 한복치마로 만든 꽃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은 지름이 1m를 넘고, 다소곳하게 봉오리진 꽃은 50cm 남짓. 모두 25송이 모시치마 꽃을 만드는데 드는 치마만 해도 7겹씩 175벌에 달하는 대작업이다.

“중정을 가운데 두고 나선형으로 걸어 올라가게 돼있는 쌈지길을 보면서 고인이 꽃상여를 타고 귀천하는 장면을 연상했어요. 그것을 전통 치마를 이용해 형상화한 거죠. 쌈지길 층계참 마다 궁중에서 입은 대란치마와 서민들이 입었던 민무늬치마, 민화를 그린 치마, 조선중기 때 귀부인들이 예식용으로 입었던 앞이 들리고 뒤는 길게 늘어지는 치마 등을 전시해 한복의 다양한 모습도 알릴 거구요.”

이씨는 한복디자이너 1세대 이리자씨의 친조카다. 어머니 이연학씨도 한복을 했다. 자연히 어린시절부터 한복을 끼고 살았지만 인생의 업으로 받아들인 지는 얼마 안된다.

“대학을 8년을 다녔어요. 가족 내력 탓에 전통복식을 전공했지만 ‘이건 너무 뻔하지 않나’는 회의가 많았죠. 1년 다니다 휴학하고, 1학기 다니다 또 휴학하고, 무대의상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러다 어느 순간, 한복에도 남들이 가지않은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스스로 ‘한복의 재발견’이라고 부르는 가지 않은 길은 한복을 조형예술화하는 작업이다. 지난해 2월에는 <한복의 오브제로의 표현에 관한 연구> 라는 논문으로 의상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지도교수였던 명지대 조효순 교수는 “한복과 미술을 접목시키는 학제간 연구의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을 높이 산다”고 말했다. 논문제출과 함께 연 전시회에는 ‘옷은 입는 것’이라는 전제를 뒤엎은, 인체가 빠져나가고 흔적만을 간직한 기억의 축적물로서의 한복 작업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두 겹 거즈로 만들고 파라핀을 입힌 뒤 구김을 넣은 치마나 가는 철사와 구리선으로 형태를 만들고 공간과 흔적을 담아낸 저고리 등이다.

“한복 만들어 밥 먹고 살지만, 한복 패션쇼 볼 때 마다 너무 천편일률적이어서 답답했어요.결국은 한복 자체 보다는 한복을 보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왜 사람들이 전통복식을 외면하냐고 불평하는 대신 한복을 통한 다양한 멋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이씨는 <황진이> 같은 TV사극들이 많이 나와서 젊은이들 사이에 ‘한복도 참 예쁘구나’ 라는 인식을 퍼뜨린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말한다. 전통복식 연구가들은 ‘제대로 된 고증없이 한복을 양장식으로 다뤘다’고 비판하지만 한복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이끌어 낸 것 만으로도 높이 살 만하다고. 한복업계가 발전하려면 한복에 대한 다양한 시도는 필수적이다.

“한복과 양장을 접목시키는 사람도 있고 양장 옷감으로 한복을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저처럼 못 입지만 한복에 대한 통찰의 시간을 주고자 하는 사람도 있구요. 이런 모든 시도들이 결국엔 한복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리고, 우리 전통문화의 저변을 넓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어머니가 서울 상도동에서 운영하는 ‘이영학 옷방’에서 일했으니 한복을 손에 잡은 지도 20년이 지났다. 사반세기 동안 한복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전통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며 한복에 두루마기에 폐백용 활옷까지 일습을 맞춰서 내심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치마 저고리 한 벌 하는 것도 아깝다며 빌려 입으려는 사람도 있다. 양극화는 한복 안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이씨가 본 고 백남준씨의 작품은 과천현대미술관에 상설전시된 <다다익선> 이 유일하다. 그러나 생전에 만났으면 코드가 맞았을 것 같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인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외경스럽지만 TV라는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선생과 한복을 예술 매체화하려는 나의 시도가 어떤 면에선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설치전은 3월 18일까지 계속된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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