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이재용(JY)체제’로 가기 위한 정지작업도 본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전날 사장단 인사에 이어 17일 사상 최대 규모인 472명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기술부문과 마케팅 등 현장인력을 대거 임원으로 발탁해 신기술개발과 신수종 사업을 발굴함으로써 이건희 회장의 창조경영 기반을 구축하는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부사장으로 30명이 승진한 것을 비롯 △전무 54명 △상무 182명 △상무보 206명 등이 승진의 기쁨을 누렸다.
이날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이재용 상무의 전무 승진. 한때 ‘부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삼성은 2인자에 대해서도 파격승진을 배제하는 인사전통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 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전시회(CES)에서 첫 공식대외활동을 한데 이어 4년만에 전무로 진급함에 따라, 그는 경영권 승계가 한발 더 다가가게 됐다.
이 전무는 2001년 삼성전자에 상무보로 입사한 뒤 회사의 경영현황을 파악하고 경영수업을 받는다는 차원에서 줄곧 기획업무만 맡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전무로서 일선 사업 또는 기획 부서의 팀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룹 안팎에서는 ‘이 전무가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TV 사업부문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JY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적배치의 변화조짐도 뚜렷하다. 우선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경영 후보군이 대거 발탁됐다. 역대 최대 규모인 30명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미래경영을 주도할 차세대 CEO후보군을 두텁게 한 것이다. 폭넓은 인재군을 ‘CEO예비부대’로 구축함으로써, 향후 JY체제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전날 단행된 인사에서 최지성 정보통신총괄사장, 박종우 디지털미디어총괄사장 등이 영전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평가된다.
재경부 경제관료 출신으로 이건희 회장의 영어통역을 맡아온 IR담당 주우식 전무가 이날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MBC기자 출신의 이인용 전무가 홍보를 총괄하게 된 점도 눈길을 끈다. 이들이 비록 ‘이재용의 사람들’은 아니지만, 외부영입 인사들이 핵심포스트에 전진 배치된 점은 세대교체와 변화쪽에 무게를 둔 JY체제의 색깔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관계자는 “이 전무 본인은 아직 일선에서 경영수업을 더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작업과 뿌리내리기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무가 당장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인사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다만 이번 승진을 계기로 변화의 단초가 마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은 JY체제로 연착륙을 위한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셈이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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