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동원체제, 정치적 독재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박정희 모델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계기로 종말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대체 모델은 어떤 것일까. 정부, 학계 모두 한국의 발전 모델을 고민하면서도 아직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등 40대 학자가 중심이 된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가 이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 ‘한반도경제론’을 제시했다. 최근 출판한 <한반도경제론> (창비)을 통해 이들은 신자유주의, 시장주의로 요약되는 미국식 모델과 사회민주주의로 단순화할 수 있는 유럽식 모델, 그리고 민족론과 계급론을 뛰어넘는 점진적, 진화론적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경제론>
한반도경제론이라 이름 붙인 이 모델은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총괄하는 종합 체제다. 핵심 가치는 연대, 혁신, 개방. 연대가 성장의 과실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라면 혁신은 사회 변화의 동력이자 개혁의 추진력이다. 그러나 둘은 상충되는 면이 있다. 혁신은 경쟁을 수반하고, 경쟁은 불평등과 독점을 초래해 연대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
이 모순의 해소를 위해 개방이 제시된다. 열린 자세로 타자와 협력하는 방법론적 원리라는 것이다. 이 원리를 대외 협력의 차원으로 확대한 것이 한반도경제권이다. 명칭에서 한반도가 강조되지만, 남북한은 물론 일본, 중국을 아우르는 복합 공동체 개념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는 “이미 대기업은 국가 단위로 활동하지 않으며 매출의 상당액을 중국 등 동북아에서 올리고 있다”며 “배타적인 국경 개념에서 탈피해 동북아 시민의 탄생을 기다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책은 개별 분야에도 지면을 할애하는데, 안병진 창원대 교수는 시민배심원제, 결선투표제, 국민소환제를 도입해 활력 있는 민주주의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연대의 가치에 주목, 교육 보건의료 아동보육 노인 등에 대한 적극적인 공공프로그램의 도입을 역설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의 노사관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직종간, 학력간 격차를 연대의 원리에 의해 줄여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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