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가 16, 17일 연 이틀에 걸쳐 독일 베를린에서 양자 회동을 가진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북핵 6자회담 진전을 위한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회동이 북측의 요청으로 이뤄졌고 북미가 베를린이라는 제3의 장소를 택해 그 동안 중재역할을 해온 중국의 ‘입회’없이 접촉을 가졌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북한의 선 요청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측이 지난해말 6자회담에서 내놓은 포괄적 제안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차기 회담 속개를 위한 관건으로 인식돼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송민순 외교장관은 5일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을 전후해“미측이 9ㆍ19 공동성명 이행에 ‘돌파구를 열 수 있는’제안을 한 만큼 이제는 북한이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을 차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에는 이미 북미가 뉴욕채널 등을 통해 베를린 회동을 조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고무된 송 장관이 “북한이 조만간 반응할 것으로 기대하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북미가 지난해말 6자회담이 재개된 이후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를 창구로 하는 뉴욕채널을 활발하게 가동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베를린에서의 양자 회동에 대해 미 국무부는 여전히 북미 양자간 직접 대화가 아니라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이뤄진 접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6일 “미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베를린 회동 이전에 한국, 일본의 수석대표를 만났고 또 회동 이후에도 한중일을 순방할 것”이라며 전체적인 맥락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북측에 양보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않기 위한 것일 뿐 북한과의 직접대화 불가라는 금기는 지난해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이후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미측의 완화된 태도가 베를린에서 결실을 맺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베를린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장소로 선호하는 곳이다. 북미간 경수로 회담(1995년)과 1차 미사일 협상(1996년)이 베를린에서 열렸고 1999년 북미간 미사일 협상 타결 및 2000년 1월 북미간 고위급회담을 통한 포괄적 관계개선합의가 이뤄진 곳도 베를린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베를린 채널이 종종 활용될 가능성은 한층 커진 상태다.
여기에다 미측이 마카오의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 가운데 합법적인 것을 가려 동결을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북측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긍정적 분위기 변화에 해당한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베를린 회동에서 북핵 폐기의 초기 이행조치 즉, 영변 원자로동결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재개 등에 대한 전향적 대안을 제시했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미측은 이 부분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고 있다. 형식 아닌 내용에서 북측의 반응이 긍정적 평가를 받을 경우, 6자회담은 늦어도 설 이전에는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측 반응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은 19일부터 이뤄질 힐 차관보의 한중일 순방과정에서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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