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은 분명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여러 차원에서 논의들이 새롭게, 그리고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논의들 간에도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남북관계에 대한 단기적인 그림에도 힘을 넣어야 하지만 장기적인 그림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 핵실험 이후, 역사적 고민 필요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북한 급변 사태이든, 회의론에 힘겹게 맞서고 있는 점진적 통일이든 이는 하나의 짧은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역사라는 거인 앞에는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자명한 것은 긴 호흡에서 보면 정치체제야 어떻든 남과 북의 경제는 지금보다는 훨씬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모습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한반도 경제구상이라는 새로운 개념틀이다. 이는 '개방적 한반도 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한 제반 구상이다. 개방적 한반도 경제권이란 남한경제, 북한경제, 동북아경제의 연관성 제고를 통해 형성되는 경제권이다.
한반도 경제권은 다음과 같은 체계로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남한과 북한이 자율적인 국민경제체제를 유지한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남과 북을 별도의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아닌 한반도를 하나의 단위로 사고한다. 북한 주민의 남한으로의 이주권을 제한하고 북한 주민의 복지 수준에 대해서는 남한 정부의 간여를 최소화한다.
경제협력 방식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수직적 통합에서 출발해 점차 수평적 통합을 가미하는 것이 핵심 요소이다. 동시에 지역, 도시, 기업 차원의 연계ㆍ결합 등 미시적 협력과 국가차원의 시장통합, 정책통합 등 거시적 협력을 병행 추진한다.
한반도 경제권은 적극적인 대외개방, 특히 동북아에 대한 개방의 수준을 대폭 제고함과 동시에 경제권 주체로서 외국자본의 지위를 인정한다. 개방적 한반도 경제권의 핵심적 주체로서 남북한의 중앙정부, 지자체, 기업뿐만 아니라 남북한에 투자한 외국자본도 포함한다. 또한 한반도 경제권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북아 지역의 중앙 및 지방 정부, 기업들도 보조적 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
한반도 경제권은 민족만을 주체로 하지 않는 개방형 경제를 추구한다. 한반도 경제권은 대외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민족 경제공동체 개념이 가지고 있는 폐쇄적 이미지를 씻을 수 있다. 한반도 경제권은 21세기 세계화의 조류를 수용하고 경제통합에 있어서 주변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견인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 동북아까지 포괄하는 경제공동체를
한반도 경제권은 북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북한을 민족뿐 아니라 지역(region)의 차원에서도 접근할 필요성과 중요성을 제기한다.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전 세계에서 볼 때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국가라는 점을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세계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문화적으로도 공유되는 바가 적지 않고, 특히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사회ㆍ문화적 동질성도 매우 높은 수준에 달해 있다. 경제협력 및 통합의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경제권은 추상적인 개념만은 아니다. 이미 개성공단이라는 맹아적 형태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특구의 확대가 동북아 경제협력의 차원까지 발전하는 과정이 바로 개방적 한반도 경제권의 발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실험으로 남북관계는 안개가 자욱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개를 들어 더욱 더 멀리 볼 필요가 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전히 많은 상상력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문수ㆍ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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