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5년차인 K기업 김모(33) 대리. 그 동안 하루 빨리 집을 장만하겠다는 생각에 7,000만원 가량을 모았지만 이젠 내 집 마련할 생각만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자포자기 심정이 된 김씨는 “이제 저축할 마음은 없고 주식 대박이나 노려야겠다”며 얼마 전 친구들과 밤새 원망의 술잔을 들이켰다.
4~5년 전만 해도 김씨는 지금쯤이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꿈꿨지만 이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2억원 가량했던 24평형 아파트가 3억원 대 이상으로 치솟았는데도 은행 대출문턱은 높아져 1억원 이상 받기 힘들어진 데다 청약가점제 시행으로 신규분양 아파트를 당첨 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김씨와 같은 처지의 2030세대들이 들끓고 있다. 가뜩이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데다 각종 부동산 대책마저 신규수요 억제에 초점이 맞춰져 이들 세대의 내 집 마련 꿈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고 있기 때문. 극심한 청년실업을 겪었던 이들 세대가 이젠 집 장만에서도 ‘사회적 패배자’로 내몰리고 있어 부동산 문제가 세대간 갈등요인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다음달부터는 DTI(총부채상환비율) 40% 규제 확대안이 시행될 것으로 보여 젊은 층의 대출 한도는 더욱 줄어든다. 6억원 초과아파트에만 적용됐던 DTI 40% 규제가 전면 시행되면 연봉 2,500만원인 김씨가 대출 받을 수 있는 한도는 1억원 정도(20년 만기, 금리 연6.5%). 3억~4억원대에 이르는 24평형대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2억~3억원을 모아야 해 집 장만까지 직장생활 10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문제는 LTV(담보인정비율)나 DTI 규제 등의 대출 규제가 신규 대출자에게만 적용되고 기존 대출자 중 만기를 연장하는 경우는 적용되지 않아 대부분 내 집 마련의 실수요자라 할 수 있는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6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DTI 40% 규제’가 기존 대출자에게도 적용될 경우 소득이 없는 대출자는 만기가 도래하면 대출금의 일부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주택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기존 대출자에게도 새로운 규제가 적용되면 주택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커 신규 대출만 규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기가 되어서 연장하는 경우는 신규 대출과 다를 바 없는데 종전 기준대로 대출을 해주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윤순철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공평하게 적용하면 집값을 하락시킬 수도 있는데 기존 주택구입자의 기득권은 보호하고 신규 대출자만 억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청약가점제 시행이 앞당겨짐에 따라 가점을 받기 어려운 젊은 층은 분양아파트 청약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됐다. 나이가 많고 무주택기간이 길고 부양가족이 많을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 젊은 신혼부부나 독신자들은 사실상 새 아파트를 당첨 받는 길이 막히게 된 셈이다. 경실련 윤 국장은 “정부의 정책 실패를 결국 젊은 세대들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격이어서 총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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