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붉은 포도주 한 잔이면 심장병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얘기가 방송을 타면, 한동안 포도주 소비량이 늘어난다. 맥주에 항암효과가 있다는 보도는 맥주 애호가들을 안심시킨다. 커피를 줄이라는 권고가 계속되다가 커피가 당뇨병과 파킨슨병, 뇌졸중 등의 위험을 낮춘다는 얘기가 나오면 힘을 얻는 사람도 있다.
한동안 두부나 청국장, 두유 등 콩식품이 '완벽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더니, 갱년기 이후의 유방암을 부를 수 있다는 보도가 살짝 찬물을 끼얹었다. 어느 쪽이나 나름대로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니 흘려 듣기 어렵다. 자꾸 귀가 얇아져 간다.
▦ '트랜스지방 공포'도 다르지 않다. 뉴욕시가 음식점에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는 소식과 트랜스지방의 위험성을 부각한 보도가 소비자 불안을 자극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트랜스지방을 특별관리가 필요한 18개 '식품 유해물질'의 하나로 집어넣고, 12월부터 가공식품의 함량 표시를 의무화한 상태였다.
제과ㆍ제빵ㆍ패스트푸드 업체가 앞을 다투어 '트랜스지방 제로화'를 선언하고, 함량 표시제를 앞당길 수밖에. '지각 대응' 지적이 없지 않지만 세계 최초인 덴마크에 3년, 미국에 1년 뒤졌으니, 다른 유해물질에 비하면 놀라운 민첩함이다.
▦ 국민의 최우선 관심사인 건강 문제인 만큼 민첩함이 흠일 수 없다. 트랜스지방은 포화지방산이나 콜레스테롤과 함께 동맥경화를 비롯한 혈관질환의 주범이며 당뇨병이나 뇌졸중, 심지어 발기부전의 요인으로까지 지목됐다.
공교롭게도 트랜스지방은 식물성 기름에 많은 불포화지방산에서 만들어진다. 식물성 기름은 산패하기 쉽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포화지방산으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화학적 조성이 변한 채 끝내 포화지방산으로 바뀌지 않은 불포화지방산이 트랜스지방이다. 쇼트닝이나 마가린 등 가공유지에 당연히 많이 들어 있다.
▦ 그럼 인스턴트 식품만 멀리 하면 그만일까. 소와 같이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은 지방을 소화하는 과정에 자연히 트랜스지방을 만들기 때문에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에는 트랜스지방이 들어있다.
가정에서 쓰는 참기름이나 옥수수 기름, 기타 식용유도 적지 않은 트랜스지방을 함유하고 있다. 감자나 곡물의 섬유소를 100도 이상으로 가열할 경우에도 저절로 만들어진다. 이 모든 것을 멀리하다가는 당장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파진다. 오히려 모든 식품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고, 절대 무해한 식품은 없으니 골고루 먹겠다고 생각하는 쪽이 여러모로 마음 편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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