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국으로 탈북해 중국 선양(瀋陽) 한국 총영사관에서 보호를 받아온 납북어부 최욱일(67)씨가 1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최씨는 1975년 천황호를 타고 동해에서 어로 작업을 하다 납북된 지 31년 만에 부인 양정자(66)씨와 아들 필규(32)씨 등 가족들의 품에 안겨 상봉의 감격을 누렸다.
이날 대한항공편으로 중국 선양을 출발, 오후 4시 50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최씨는 검정색 중절모에 양복 차림이었으나 그간의 험난했던 여정을 증명하듯 수척하면서도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최씨는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마중 나온 부인 양씨 등 가족들과 부둥켜 안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국민 여러분, 나를 한국 국민으로 받아들여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
부인 양씨가 그간의 회한을 못이긴 듯 계속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자 “기쁜 날 눈물을 거두자”고 달래기도 했다.
최씨는 고령임을 감안, 우선 건강검진을 받은 뒤 납북경위 등에 대한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가족들에게 인계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외교부는 선양 총영사관을 상대로 자체 감사를 벌여 탈북 후 도움을 청한 최씨에게 불친절한 응대를 한 주 선양 총영사관의 행정원을 해고하고 담당 영사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했다. 총영사관은 기관 경고를 받았다.
# 최씨 일문일답/ "北서 풀 뜯어먹고 살기도"
다음은 입국 직후 최씨와의 일문일답.
-소감은.
“31년 동안 북한에서 갖은 고통과 멸시를 당했다. 또 보위부에 의해 항상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한국 정부가 탈북 기회를 마련해주고 한국 국민으로 다시 받아들여줘 영광이다.”
-탈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짐차에 실려 3일 동안 200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렸던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북한에서의 생활은.
“입을 것, 먹을 것 제대로 된 것이 어느 하나 없었다. 보위부 감시 대상이 되어 죽도록 일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고난의 행군’ 때 토끼나 먹는 풀을 뜯어먹으며 살았다.”
-북에도 가족이 있는데.
“잘 살게끔 하고 나왔다.”
-한국에 올 수 있다고 믿었나.
“한국에서 도와주는 사람 왔을 때 확신이 들었다. 북에 살면서도 계속 살 것이란 생각 전혀 안 했다. 언젠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 탈북 요청했을 때 선양 영사관이 도와주지 않았다는데.
“전혀 일 없다.(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 잘해줬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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