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 걱정은 말고 엄마는 열심히 일 하세요"
5일 오전 7시30분. 서울 서초동 아파트 단지를 나선 ㈜대교 이은경(32) 대리는 걸어서 5분 거리인 어린이집에 다섯 살 아들을 맡긴 뒤 회사로 향했다. 이 대리가 아들을 찾으러 다시 어린이집에 들르는 시간은 대개 오후 8시께. 무려 12시간30분이 지난 뒤지만, 회사에서 아들 걱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사가 운영하는 ‘푸르니 어린이집’에 아들을 맡기기 때문이다.
이 대리는 “하루 평균 12시간 넘도록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을 회사가 직영하고 있어 안심이 된다”면서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상당수 직원들이 어린이집 근처로 이사를 왔다”고 말했다. 현재 사는 아파트 15층 라인의 경우 주민의 절반 정도가 같은 어린이집 학모부라는 것이다.
교육기업 ㈜대교(회장 송자)의 사시(社是)는 ‘건강한 인간,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이다. 사시에 ‘가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만큼, 1975년 회사 설립 이래 지속적으로 모성 보호와 여성고용 보장을 통한 가족친화경영에 힘쓰고 있다.
실제 대교가 만든 어린이집은 국내 기업 부설 보육시설 중 최고로 꼽힌다. 2003년 이후 전국 6개 지역에 설치한 어린이집에는 현재 직원 자녀 104명이 다니고 있다. 교육기업이라는 특성상 어린이집의 교재와 프로그램의 질을 최상급으로 유지하는 등 선진국의 보육시설 기준에 부합하도록 운영하고 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서울 서초동과 경기 분당ㆍ일산에는 하나은행 한국IBM과 공동 출자한 ‘푸르니 어린이집’을, 부산 해운대ㆍ대구 동대구ㆍ울산 지역엔 지역 대학과 연계한 ‘눈높이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올해엔 대전에도 ‘눈높이 어린이집’을 개설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재단을 따로 세워 직영하는 푸르니 어린이집은 물론, 위탁 경영하는 눈높이 어린이집도 지역 대학의 우수한 인력과 회사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대교 직원들은 생후 18개월~취학 전 자녀들을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다. 부모들의 출ㆍ퇴근 시간을 고려해 운영시간이 오전 7시30~오후 10시30분으로 여유롭다. 기업의 직장보육시설은 본사나 공장 등 사업장 안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교는 되도록 직원 거주 밀집지역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부모가 자녀를 데리고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6세 자녀를 서초동 푸르니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는 김영선(32) 대리는 “아이를 집에 두고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회사 어린이집 얘기를 하면 너무 부러워한다”면서 “간혹 경쟁업체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더라도 보육문제에 생각이 미치면 지금 다니는 직장에 더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대교의 여직원 지원정책은 각별하다. 출산 후 보이지 않는 압력과 가사부담으로 직장을 떠나는 국내 특유의 여성 고용불안 요인을 없애기 위해 30년 전부터 ‘원직 복직’제도를 시행 중이다. 원직 복직은 출산휴가 뒤 원래 일하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출산은 여성의 사회생활에 장애’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려는 뜻도 들어 있다. 이 제도 덕분에 최근 4년간 출산휴가자 500여명 전원이 출산 전 맡았던 업무로 다시 복귀했다.
이민진(36) 과장은 97년 첫 출산 후 당시 일하던 눈높이 교사직에 그대로 복직했고, 2001년 두 번째 출산 뒤에도 현재 일하는 마케팅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과장은 “출산 후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정보기술(IT) 계통 회사에 다니다 옮겨온 여직원들은 대교의 원직 복직 문화를 접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대교는 30년 전 창사 무렵부터 국내 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했고, 97년부터는 직원들이 출ㆍ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도를 도입했다. 방과 후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기업의 업무 특성상, 아침 일찍 출근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이다. 또 자녀 교육을 비롯한 집안의 각종 대소사로 바쁜 ‘엄마’ 직원들을 위해 매년 4일씩 안식휴가를 제공, 언제라도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 직원은 “4일을 다 쓰면 회사에서 유급으로 하루를 더 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집에 일이 생기면 당연히 휴가를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제도 덕분에 대교는 ‘여성고용 우수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조사에서 대교는 교육서비스업 평균(24%)의 2배가 넘는 50%의 여성고용률을 기록했다. 여성관리자 비율도 21.6%로 동종업계 평균(3.6%)의 6배에 달한다.
직원들의 가정생활을 위한 지원책도 눈에 띈다. 대교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취지로 82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대교가족 부모초청 해외 효도여행’을 실시하고 있다. 경영이 힘들었던 외환위기 당시에도 효도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는 일본 중국 등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효도여행을 다녀 온 직원 부모만 1만 여명에 달한다. 젊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신혼부부 축하연도 열고 있다.
송자 회장은 “출산 및 양육 지원을 통해 궁극적으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경제활동의 인프라를 강화하는 일은 법정 제도 시행이나 일시적 캠페인 만으로 달성되기 어렵다”면서 “오랜 세월 기업의 경영이념 속에 이런 정신들이 알차게 뿌리내려져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 공공기관·기업 가족친화지수 37점
우리나라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가족친화환경은 낙제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국내 기업과 대학,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705개 기관의 ‘가족친화지수’(FFIㆍFamily Friendliness Index)를 조사한 결과, 평균 37점(100점 만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수ㆍ우ㆍ미ㆍ양ㆍ가로 따지면 전체 평균이 ‘가’인 셈이다. 가족친화지수란 여성부가 이화여대 경영학과에 의뢰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탄력근무제, 자녀양육ㆍ교육 지원, 부양가족 지원, 근로자 지원, 가족친화문화 조성 등 5개 범주를 종합해 산출했다.
전체 705개 평가대상 기관 가운데 평균 50점 이상을 받은 기관은 91개(12.9%)에 불과했다. 정부기관(285개)의 평균 점수는 44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대학(46개)과 기업(347개)은 각각 39점, 31점으로 전체 평균을 밑돌았다.
가장 많은 기관이 시행하고 있는 가족친화제도는 출산휴가제(88.7%)와 육아휴직제(72.2%)였다. 탄력근무제의 경우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직무대체제(특정인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이 업무를 대신하도록 준비시키는 것) 도입률이 40.1%(283개)로 비교적 높았다. 반면 개인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재택근무제 도입률은 각각 9.8%(69개), 5.4%(38개)에 그쳤다.
가족이 아플 때 휴가를 내는 가족간호 휴직제 도입률도 29.1%에 불과했다. 정부기관 및 지자체는 과반(50.2%)이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기업체의 도입률은 11.2%에 그쳤다. 그나마 이 제도를 이용하는 근로자 비율은 각 기관 모두 10%에 못 미쳤다.
직원들이 직장 및 가정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직장 내 상담프로그램 운영비율도 23%(162개)에 머물렀고 정시 퇴근제를 ‘매우 잘 지키고 있다’고 답한 경우는 9.1%(64개)에 불과했다. 또 ‘배우자 출산 때 남성근로자가 5일 정도의 휴가를 얻을 수 있는 직장 분위기인가’라는 질문에 15.3%(108개)만 ‘그렇다’고 답해 이 제도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대상 기관들은 가족친화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원인으로 ‘더 중요한 경영 이슈 산재’, ‘투자비용’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전체의 60%에 가까운 400개는 ‘가족친화제도 운용 후 근로자의 근무태도가 개선됐다’고 답했고, 338개는 ‘노사관계가 향상됐다’고 답하는 등 가족친화제도가 조직의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었다.
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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