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인 현직 고법 부장판사가 판결에 불만을 품은 전직 대학교수로부터 석궁에 맞아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법정 밖에서 소송 당사자가 법관에게 물리적인 테러를 가한 것은 처음이다.
15일 오후 6시40분께 서울고법 민사2부 박홍우(55) 부장판사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자신의 아파트 현관에서 김모(48)씨로부터 석궁 한 발을 복부에 맞았다. 박 부장판사는 왼쪽 복부 아래쪽에 지름 8㎜, 깊이 2㎝의 상처를 입어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응급실에서 봉합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석궁 화살촉이 둥근 모양이어서 장기가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의식도 또렷하다”며 “파상풍과 염증 예방치료를 했는데 앞으로 일주일 정도 경과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응급조치 후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부장판사는 사법시험 22회로 2005년 대구고법 부장판사를 거쳐 지난해 2월부터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범행 후 검거된 김씨는 현재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김씨는 1991년 서울 S대 교수로 임용됐다가 연구 소홀 등 이유로 징계를 받고 96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뒤 법원에 복직을 요구하는 부교수 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하지만 김씨는 1, 2, 3심 모두 패소했다.
김씨는 2년여 전부터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동시에 2005년 별도의 교수 지위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으며, 12일 서울고법 항소심에서도 다시 패소하자 재판장인 박 부장판사에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는 사건 이후 장윤기 처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가졌고 이용훈 대법원장은 박 부장판사가 입원한 병원 상황실을 찾아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다. 법원행정처는 긴급 회의 결과 이번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향후 판사 테러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사건을 보고받고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 총장이 관할청장인 서울동부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검사장이 수사본부장을 맡아 범행동기 사건경위 등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 석궁(石弓)
길이 25㎝ 정도의 짧은 화살을 사용하는 개량형 활. 최대사거리 270여m, 유효사거리 60m. 중세 초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갑옷을 뚫을 수 있어 온 유럽으로 급속히 퍼졌다.
현대에는 주로 사냥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상진 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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