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의 부분파업이 시작된 15일 울산 동구 염포동 현대차 수출부두 야적장. 한 달 전만해도 형형색색의 자동차로 빈틈없이 채워졌던 이곳에 축구경기장 몇 개 넓이의 구멍이 생겼다. 전체 2만5,000여평의 이 야적장에는 평소 차량 5,000대가 꽉 들어차 있었다. 5,000대는 대형 차량 운반선 1대 적재분량으로 배가 접안하면 언제라도 적재할 수 있도록 대기하는 물량이다.
하지만 지난 주 중반부터 빈 공간이 늘어나더니 급기야 야적장 절반이 을씨년스럽게 비어버렸다. 차량 운반선은 울산항 연해에 닻을 내린 뒤 며칠씩 기다려 배에 차량을 싣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노조가 부분파업을 감행하는 바람에 기다리면 되지만 전면파업에 나설 경우 야적장은 회색 콘크리트만 보일 게 뻔하다.
노조가 운집한 쪽에서는 “사~랑도 명~예도…”라는 운동가가 확성기를 통해 시끄럽게 들려왔다. 노조는 이날 본관 앞 잔디광장에서 4,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파업출정식을 가졌다. 하지만 활기찬 곳은 그곳 뿐이었다.
노동가를 뒷전으로 하고 둘러본 1∼5 공장은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근로자들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단일 승용차생산 공장으로는 세계적 규모인 하루 5,500∼6,000대 생산공장이 하루 아침에 멈춰 버리니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날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2,830대의 생산차질이 빚어졌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현대차 1차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는 북구 효문공단에서는 한숨소리만 들렸다. 종업원 1,000여명의 중견 협력업체인 D사는 현대차와 가동시간이 연동되는 ‘JIT(Just in time)’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어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 이날 오후부터 생산을 중단했다.
사내 공터에서 담배를 문 한 근로자는 “지난해 현대차가 한달 넘게 파업하는 바람에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했다”면서 “현대차 노조가 성과금 투쟁을 벌이는 동안 얼마나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앉아서 피해를 입는지 관심이나 있는 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인근 협력업체의 한 CEO는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자금사정이 나쁜 중소 협력업체는 연쇄부도 사태로 내 몰리고 있다”면서 “특히 설이 코 앞인데 생산차질로 조합원들에 빈 봉투를 들려 고향에 보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께 노조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다시 찾은 울산공장 내 노조사무실 건물 외벽에는 “현자(현대자동차) 동지들! 힘내십시오” “현자노조 죽이기는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에 대한 탄압이다” “노동탄압 분쇄 민조노조 사수” 등의 내용이 담긴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긴장감을 더했다. 노조 간부들은 다음날 투쟁일정을 잡기 위해 회의를 열고 있었다.
한 노조 관계자는 “노사 합의와 십 수년 관행을 하루 아침에 깨고 ‘원칙’이라는 여론몰이로 노조간부를 상대로 손배소까지 제기한 것은 노조를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간주한 것”이라며 “회사의 의도가 분명해진 이상 우리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공장 본관 2층 사무실에서 만난 회사의 한 과장은 “봄부터 임단협이 예정돼 있고 2009년 적용 목표로 노ㆍ사, 전문가가 참가하는 ‘근무환경변화 전문가회의’ 가동이 시급한데 연초부터 이렇게 분위기가 나빠서 큰 일 났다”면서 “해외에서 현대차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데 안에서는 이렇게 치고 받고 싸워야 하니 서글프기만 하다”고 말했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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