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마세요(forget-me-not)'. 물망초라는 꽃의 영어 이름이다. 중학교시절 전설적인 테너가수 마리오 란자가 주연으로 출연해 노래를 부르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 바로 물망초라는 노래가 나온다.
아름다운 그의 목소리와 노래에 매료되어 집에 와 사전을 찾아보고 'forget-me-not'이라는 것이 물망초라는 것을 알고 너무 멋있는 꽃 이름에 감복한 적이 있었다.
● 개헌 제의는 '황혼의 몸부림'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이 많이들 걱정했듯이 또 한 번 깜짝쇼를 했다. 갑자기 개헌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개헌 제안 뉴스를 듣는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이 화만 나는 한국정치를 공부하며 무미건조하게 사느라고 오랫동안 잊지 있었던 물망초라는 노래였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의 개헌제의는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 나를 잊지 마라"는 몸부림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정치학자와 시민단체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선거까지 겹쳐져 거의 매년 선거를 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고 2008년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겹치는 해인 만큼 2008년에 맞춰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를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특히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 정략적 개헌이라는 비판 때문에 개헌추진이 어려우니 가능하면 임기 초에 이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같은 주장을 무시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대선을 열한 달 앞두고 개헌을 들고 나왔다.
정치 9단인 노 대통령이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 정략적이라는 비판 때문에 개헌추진이 어려우니 가능하면 임기 초에 이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개헌을 하고자 했다면 2004년 총선 승리 후 17대 국회 초에 이를 제의했어야 했다. 이후에도 기회는 많았다. 예를 들어 2005년 한나라당과의 연정제의 때 개헌도 같이 제안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기회들을 무시하다가 갑자기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개헌을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대통령 5년제의 부작용,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해 20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2008년의 의미를 그전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지난 연말에 갑자기 공부를 해 깨달은 것인가? 평소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 노 대통령이 설마 그동안 이 문제들을 몰랐겠는가.
그렇다면 남는 답은 바로 물망초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영화 "죽어도 좋아"가 잘 표현해주었듯이 죽음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초조감에서 노인들이 벌리는 '황혼의 몸부림' 같은 것이다. 이 점에서 개헌제의는 "노무현판 죽어도 좋아"에 다름 아니다.
제의방식도 문제이다. 노 대통령이 개헌을 위해서는 야당, 특히 한나라당의 협력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진정으로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개헌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야당대표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식사를 하며 이 같은 제의를 해 협조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긴급 기자회견을 고지해 유신과 긴급조치 식으로 제안을 선포하고 말았다.
● 엉망이 된 민생은 어쩔 것인가
개헌제의에 대해 민심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아니 이번에도 민심은 정확했다. 다수는 4년 중임제 개헌이 필요하지만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아니라 다음 정권에 가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민심을 무시하겠다고 이미 선포를 해 놓았으니 민심이 부정적이라고 무슨 대수이랴. 그리고 개헌제의는 노 대통령이 의도한 대로 그 약효를 발휘해 임기 말을 맞아 잊힐 것 같은 노 대통령을 정국의 핵심으로 복귀시켜놓았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지루한 개헌놀음에 더욱 엉망이 될 민생은 어찌할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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