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 기법인 프로파일링(profiling)은 이제 일반에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최근 유영철 정남규 등 희대의 연쇄살인사건과 전국에서 '발바리'들이 저지른 성폭행사건이 잇따르면서 언론에 이 기법이 자주 소개된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현장 안팎의 정보들을 분석해 범인이 대강 어떤 인물인지를 추정해 내는 방법이다.
사람을 슬쩍 훑어만 보고도 금세 "인도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 최근 퇴역했군요"라고 단정짓는 셜록 홈즈식 추리도 그런 것이다. 얼굴 빛, 몸짓, 옷차림, 말투, 목소리 등 사소한 모든 것이 판단을 끌어내는 정보다.
▦ 경기 화성지역 주민들이 15년 만에 재현된 '살인의 추억'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한달 사이에 여성 3명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실종자들의 휴대전화가 꺼진 장소도 인접해 있고, 가족에게 협박전화도 없었으며, 아직까지 신용카드가 사용되지 않은 등 여러 유사점이 심상치 않다. 그런데도 경찰은 우연이 몇 개 겹쳤을 뿐, 별개 사건이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1986년부터 5년 간 부녀자 10명이 희생된 화성연쇄살인사건 때도 그랬다. 여섯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경찰은 비로소 '연쇄살인'이라는 여론을 받아들였다.
▦ 어느 나라 경찰이든 일련의 유사 범죄를 가급적 연쇄범죄로 묶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개별적으론 일상 수준의 사건이라도 일단 연쇄범죄로 규정되면 사회적 관심이 폭증하고, 때문에 수사부담도 비할 수 없이 커진다.
그러나 매스컴이나 상사들의 성마른 닦달에 시달리더라도 일단 연쇄범죄로 규정하고 나면, 수사 효율성은 크게 높아진다. 활용할 수 있는 프로파일링 정보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당장 여러 사건의 관련 장소를 연결해 범인의 행동패턴과 운신반경을 추정하는 지리적 프로파일링부터 가능해진다.
▦ 연쇄범은 육식동물처럼 '영역'이 있어 낯선 곳을 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매번 학습하면서 '진화'하므로 영역이 넓어지고 수법도 교묘해진다. 그러고 보면 화성연쇄살인과의 연관성도 무조건 배제할 것은 아니다.
범죄충동이 한동안 잠복하거나 다른 범죄로 인한 복역 등으로,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범행이 저질러진 사례는 적지 않다. 물론 실종자들이 어딘가에서 무사하길 바라는 심정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기자라기보다는 형사의 심정으로 화성 일대를 헤집던 옛 기억이 착잡하게 떠올라 이런저런 단상을 풀어 본 것 뿐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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