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다음은 인도인가. 지난해 국내 미술판에 거세게 불어닥친 중국 현대 미술 붐을 선도했던 아라리오 갤러리가 인도에 눈을 돌렸다. 12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배고픈 신(Hungry God)’ 전은 이 화랑이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인도 작가 12명의 작품으로 구성한 전시다. 지난해 가을 베이징의 아라리오에서 했던 전시를 들여 왔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비디오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인도 현대 미술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지난해 서울의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 한국과 인도의 젊은 작가들로 구성한 ‘혼성풍’ 전에서 그 일부를 보여줬을 뿐이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이번 전시가 인도 현대 미술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엄선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전시 제목 ‘배고픈 신’은 수보드 굽타(43)의 작품 <탐욕스런 신을 위한 5개의 제물> 을 변주한 것이다. 신분 고하를 떠나 인도 전국민이 쓰는 스테인레스 그릇들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이 거대한 설치물은 와르르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번쩍번쩍 기념비적 광경을 연출함으로써, 인도 사회를 보는 작가의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탐욕스런>
‘배고픈 신’이란 야만과 신성함이 뒤섞인 인도의 이미지다. 전시작들은 인도의 역사적 경험이나 오늘의 모순을 표현한 것이 많다. 200년 넘게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어두운 기억과 그로 인한 종교ㆍ민족 갈등과 분쟁, 급속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빈부 격차와 도시 문제 등 인도의 복잡한 현실이 작품에 스며 있다.
힌두교가 신성하게 받드는 흰 소를 두고 은똥을 누는 시커멓고 멍청한 소로 만든 탈루르(37)의 조각, 인도 독립 영웅들의 사진을 붙인 녹슨 고물 자동차로 민족주의를 풍자한 나타라지 샤르마(49)의 설치, 인도 - 파키스탄 분쟁으로 양국 군인에게 강간당한 여성을 어머니 인도의 이름으로 용서한다는 남자의 말과 대비시킨 날리니 말라니(58)의 비디오 작품, 눈ㆍ코ㆍ귀ㆍ입을 낱낱의 격자로 분리하고 그 위에 인도 국경선을 겹친 리나 칼라트(35)의 그림,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목숨을 건 채 세계의 베스트셀러를 팔고 있는 가난한 소년의 거대한 동상을 만든 지티쉬 칼라트(33)의 작품 등이 그러하다.
다분히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발언으로 들리는 이런 작품들이 새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데서 이들의 작가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 위로 영상을 쏘아 그림과 영상을 겹치거나 분리해서 인도인의 고달픈 유목적 삶을 표현한 랑비르 칼레카(54)의 비디오 작업은 회화와 비디오를 결합한 새로운 기법으로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들은 세계 미술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스타급들이다. 베이징 아라리오의 기획자가 작가들을 찾아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스튜디오에 남아 있는 작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양대 경매사에서 지난해 인도 현대 미술품의 매출액이 2004년보다 9배나 성장한 5,435만 달러를 기록할 만큼 인도 현대 미술은 최근 부쩍 각광을 받고 있다. 전시는 2월 19일까지. (051)744-2602
부산=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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