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면 되게 하라, 특전부대 용사들! 아~ 아~ 검은 베레, 무적의 사나이!”
새벽 잠에 취한 산등성이가 별안간 터진 군가소리에 퍼뜩 깬다. 9일 오전 강원 평창군 횡계면 황병산 자락. 육군 특수전사령부 천마부대 ○○특전대대의 혹한기 훈련이 고즈넉한 산의 고요를 가른다. 유사 시 가장 먼저 적지에 침투로를 여는 특전대원의 혹독한 조련 속으로 기자도 들어갔다.
수은주는 영하 12도. 바람이 쌩쌩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갔다. 아침 훈련은 ‘알몸 급속 행군’. 말만 행군이지 전력 질주다. 수천 개의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추위에 웃통을 벗고 8㎞를 뛴다. 고역이다. 지난 주말 25.7㎝나 내린 눈은 종아리를 삼켰다.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버겁다. 30분도 안돼 ‘괜히 따라왔다’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숨돌릴 틈도 없이 신체단련(PT) 체조와 특공무술이 이어졌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고 잡념은 사라진 채 오직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하는 일념뿐이다. 도대체 얼마나 지났을까. 맨 살에 파고드는 해발 1,400m의 산바람이 이제 춥다 못해 따갑고 아리다.
힐끗 돌아본다. 대원들은 그다지 추워보이지 않았다. 훈련 후 개울에서 냉(冷)찜질까지 하면서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불혹을 훌쩍 넘은 35년차 특전용사 김기석(46) 원사는 “강인한 체력과 호흡은 기본이다. 나이가 들어 아프다고 열외를 하면 검은 베레를 쓸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특전사 겨울훈련의 백미는 ‘설상기동 훈련’이라 불리는 스키 훈련이다. TV에서 본 것처럼 멋지게 설원을 누비는 모습을 그렸지만 이내 도전을 접어야 했다. 경사 20도의 산허리에 올라서니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고, 그게 하루 아침에 되나요.” 보기 딱했는지 대대장 김현우(43) 중령이 웃으면서 지나친다. 설상복까지 챙겨 입은 게 민망했다. 군용 스키는 고로쇠 나무로 특별 제작된 산악용 스키(길이 80~90㎝)다. 기본적인 제동장치도 없어 긴 장대 하나에 전적으로 의지해 방향전환과 타격임무까지 수행해야 한다.
넋을 잃고 보는 사이 강동식(32) 상사가 70여m를 유연한 자세로 활강하더니 미끄러지듯 옆으로 넘어지며 사격자세를 취한다. 곧 이어 K_1 소총이 불을 뿜자 나무 사이에 숨은 30m 전방 표적지가 어김없이 쓰러진다. 김 중령은 “우리나라는 험준한 산세와 눈이 많은 기후라 스키 적응 훈련은 겨울철 작전수행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훈련을 마치고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시간 하얀 눈에 노출돼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빅 화이트(Big White)’ 현상이다. 대원들이 선글라스를 쓴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막사 한 구석에서는 한 무리의 대원이 위장크림을 바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특전사 본연의 임무라 할 수 있는 수색ㆍ정찰 훈련이 시작될 참이다. 적지에 침투해 은거지(비트)를 만들고 추위와 싸우며 밤을 꼬박 나야 한다.
안두길(24) 하사는 “동행은 여기까지”라고 했다. 빡빡한 시간과 위험한 조건에서 전투 실전기술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션 임파서블(불가능은 없다)!”이란 짧은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냉철 강인 신속 정확이 특전대원의 전부는 아니다. 배석진(30) 대위는 “최고로 부드러운 남자들”이라고 했다. 칠흑 속 외곽 경계근무 초소에서 입대 4개월차 신출내기 양재민(22) 하사를 만났다. “저희 어머니가 말입니다. 특전사에 간다고 했을 때 말입니다. 눈물까지 흘리시면서 말렸는데 말입니다. 몸 건강히 있고 돈까지 부쳐드리니까 말입니다. 이제는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시면서 아들 자랑 못해 안달이십니다, 하하.”
그의 낯엔 적진을 노려보는 날선 눈빛은 사라지고 청년의 행복한 미소가 피었다.
평창=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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