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즐거움 / 김경집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ㆍ252쪽ㆍ9,500원늙는다는 것의 의미 / 플로리다 스콧-맥스웰 지음ㆍ신명섭 옮김 / 종합출판 발행ㆍ174쪽ㆍ8,500원
‘내가 나이 들어 현명해질 때, 슬픔은 눈에서 걷히리. 쓴소리들로부터도 자유로와지리.’ 1980년대를 풍미했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에서의 통찰은 상당히 동양적이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저런 내용이 팝송의 옷을 입고 나와, 제법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미국과 고도 자본주의의 부추김에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 갖은 애를 써 보는 21세기는 늙어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 재생산해 오고 있다. 육체 자본주의하에서 나이듦은 야유의 대상에 가깝다. 나이 먹어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늙음은 곧 쇠(衰)해진다는 것일까?
노화는 즐거움이라고 인문주의자 김경집(49)씨는 말한다. <나이듦의 즐거움> 은 그가 인문ㆍ예술 분야를 거닐며 얻은 사색의 결과이자, 3년 전부터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낸 100여 편의 편지 중 68편을 집성한 결과다. 나이듦의>
노안이 찾아와 시력(視力)은 잃었으되 사물을 따스하게 보게 하는 너그러움, 즉 심력(心力)을 얻었으니 노화가 고맙기까지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흰 머리를 염색해 달라는 아내, 약간의 여유로 시작한 미술품 수집과 여행 등은 그동안 스쳐 지나간 것들을 다시 보게 해 준다.
저자는 “딱히 이뤄 놓은 것은 없고 해결해야 할 책무와 가장으로서의 의무는 짓누르지만, 미래의 삶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대비도 마련되지 않은 삶”이라면서도 “아직도 가고 싶은 길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재즈처럼 살라고도 한다.
‘변주(變奏)가 아니라 새로운 변용(變容)의 미덕, 즉 재즈의 여유와 관용을 누릴 줄 아는 때가 바로 중년 아닌가’ 하고 어깨를 다독인다. 그러면서도 젊은 친구들과 노래방 가서 랩을 부를 줄도 아는 중년이 되자고 한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지금 가톨릭대학에서 인간학과 영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8순이 된 인문주의자 플로리다 스콧-맥스웰(82) 여사가 쓴 <늙는다는 것의 의미> 는 속편격이다. 삶을 정리해야 할 나이에 이른 사람들에게 연륜이란 지나간 세월에 대한 패배이면서 동시에 승리라고 말한다. 배우, 작가, 여권운동가, 분석 심리학자 등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그는 관조의 경지를 보여 준다. 늙는다는>
풍요의 시대라는 지금, 고난과 인내의 미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짱을 상실해 간다는 지적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은 물론 인간성마저 몰수당한 군중으로 전락해 간다는 것이다. 미국 현대사의 격렬한 시기를 선두에서 체험하고, 삶의 순간 순간을 적절히 끄집어 내면서 삶을 정리하는 대선배의 말이 명상록을 읽는 듯하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막내 손자와 함께 지내면서 느끼게 되는 가슴 벅찬 감흥에서 저자는 정화되고 승화한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 장 ‘침묵의 의미’는 그러므로 또 다른 차원으로의 긴 여행에 대한 사색이기도 하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