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이 <맥베스> 를 가지고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두 번째로 셰익스피어의 무대화에 도전했다. 희곡 <맥베스> 는 연출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고전인 바, 다양한 방식으로 공연돼 왔다. 이윤택은 군부의 정권 찬탈을 담은 우의극으로 재해석한 바 있고, 김동현은 포스트모던한 해체극 형식의 <맥베스 쇼> 를 여러 차례 공연했다. 극단 목화의 이번 공연은 성격 비극에 비교적 충실한 버전으로 욕망에 휘둘려 날뛰는 ‘숫소 같은 사내 맥베스’를 좇는다. (정진각 역) 맥베스> 맥베스> 로미오와> 맥베스>
정전(正殿)을 둘러싼 기둥을 세워 회랑을 축소 재현한 무대는 권력욕의 거대한 진열장이자 연회장이 된다. 이 회랑은 언뜻 텅 빈 우사(牛舍)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의 기호성은 의상에서부터 음악, 안무, 오브제 등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요소들이 구축 보완하기에 가능하다.
마녀들이 입은 선지빛 망토와 맥베스의 왕관을 대체한 우각모(牛角帽), 맥베스 부인이 맥베스와 함께 추는 플라멩고 춤사위 등은 연출 의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맥베스가 최후에 보는 환영 장면에서 여덟 명의 선왕들이 하얗게 육탈한 쇠머리를 쓰고 무대에 포진하기도 한다. 운명의 투우장으로 내몰린 맥베스는 결국 지나친 욕망의 말로를 대변하는 희생양이 되어 쓰러진다.
연극 <맥베스> 하면 단연코 마녀와 만나는 장면을 기대하게 되는데, 마녀들은 이번 연극에서 애니메이션 속 꼬마 마녀처럼 빗자루를 타고 등장한다. 그래서 맥베스의 귀에 욕망의 독을 들이붓는 마녀의 위협적인 존재감은 약화하고, 맥베스의 내면을 가압하는 공포감은 그만큼 묽어졌다. 마녀의 솥단지는 붉은 천의 율동적인 움직임을 이용해 표현되는데 선지국솥에서 두꺼비 얼굴 형상이 솟고, 다시 거대한 음부가 되어 맥베스의 운명을 예언하는 아기를 낳는 장면에서는 오태석 특유의 유희성이 돌출한다. 맥베스>
오태석이 가장 공을 들인 우리말의 운율과 예스러움을 살린 대사의 조탁은 맥베스의 서사를 부드럽게 길들이지 못하고 겉돈다. 그 간 정겹게 들렸던 목화식 어법이 다소 이물스럽게 느껴지는 데는 말이 아직 배우의 몸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가의 손길에도, 숙련된 배우와 솜씨 있는 스탭진의 뒷받침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아무래도 충분한 연습만이 극장 안의 연금술을 일으키는 비결이라는 듯 삐걱거린다.
지난해 11월 말 <로미오와 줄리엣> 영국 바비칸센터 원정공연의 피로감 때문일까? 말과 볼거리를 이 극단 특유의 황홀한 숨쉬기로 만드는 데는 휴식과 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연극은 와락 얻는 돈오돈수의 경지가 아니라 찬찬히 도달하는 돈오점수의 숙명임을 다시 한 번 느낀 공연이다. 1월 17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매일 2회, 4시30분 8시. 로미오와>
극작ㆍ평론가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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