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바라고 있지만 현실화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방인 북한이 과연 정상회담에 동의할까’라는 근본적 회의다. 국내 보수 진영의 반대 움직임,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의 의견 등도 정상회담 개최에 영향을 미칠 변수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남쪽 답방을 통한 2차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그 뒤 여권과 진보적 북한학자 등을 중심으로 끊임 없이 정상회담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북측은 묵묵부답이다. 실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2005년 8월을 전후해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북측이 호응하지 않아 무산된 경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든지 정상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혀왔다.
북측이 뻣뻣한 태도를 보인 것은 대미관계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이후 북한의 모든 대외 정책은 미국과의 협상에 집중돼 왔다. 북측은 특히 지난해 이후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 카드까지 사용하면서 미국과의 벼랑 끝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핵 카드를 최대한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외교 관계 개설, 경제적 지원 등을 얻어내고자 하는 북측 입장에서 남쪽의 정상회담 제안이나 남북관계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상황은 꼬일 대로 꼬였다. 지난해 12월 5차 2단계 6자회담이 재개됐지만 북미간의 근본적 불신 관계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특히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를 둘러싼 논란이 북핵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먼저 나서 북미간 오해와 불신을 풀고, 중재하는 형식의 회담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의 모든 정책은 최종적으로 김정일 위원장이 결정하고, 그를 직접 설득하지 않는 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남북 정상들이 만나야 한다”는 논리다. 통일부가 2007년 대북정책 추진 방향 보고서에서 남북정상회담 필요성을 ‘북핵 상황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관계 자체로 볼 때도 2000년 이후 19차례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된 각종 남북협력방안을 재점검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사업추진 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는 현재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당국자들은 정상회담 질문이 나올 때마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로서는 추진되는 게 없다”고 부인한다.
그러나 외교안보 부처 장관들의 잇따른 정상회담 필요성 발언, 통일부의 대북정책 추진 계획 등으로 군불을 지피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다는 반론도 있다. 이들 부처에서는 노 대통령 임기 말인 금년 중에 정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서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에 난색을 표시할 경우 제3국이나 민통선 이북 도라산역 등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특히 2000년 이후 남북 최고 당국자간 막후 대화를 주도했던 서훈씨가 북한 담당인 국정원 3차장으로 승진한 일도 정상회담 준비용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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