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한 여론이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1987년 체제로 20년동안 달려온 타이어를 바꿔 끼면서 재정렬하자는 것이다. 이게 실현되면 국가적으론 수 백조원의 가치가 있다. 5년 단임제에서 빚어지는 대통령 무책임제와 정책의 혼선, 임기 3년차 넘어서면 발생하는 누수현상 등 폐단을 손봐야 한다. 이번에 개헌 못하면 20년을 이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정책은 명확히 실패했다. 70년에 출산률 4.2%였던 것이 80년대 가서 2.0%로 뚝 떨어졌다. 단임제가 아니면 고쳐졌을 것이다. 5년 단임제가 갖는 전망의 협소함 때문이다. 교육문제도 그렇다. 학생선발 방식고치는 것 외에 교육시스템 손대지 못했다. 정책시스템이 장기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임이 가능해지면 달라진다. 한나라당의 애국심이 관건이다. 한나라당이 개헌을 국가 미래발전과 직결된 아젠다로 볼 것이냐 정략적 아젠다로 규정할 것인지에 따라 경로가 달라질 것이다.”
_염동연 의원의 선도 탈당론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합신당 구상이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
“(염 의원의) 충정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모색을 해봐야 한다. 지금 10인10색, 100인100색으로 상황이 워낙 복잡하고 어려움이 중첩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선도탈당은 바람직하지 않다.”
_결국 과거 신한민주당에서 양 김씨가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나갔듯이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1월1일 포항제철에서 용광로 둘러보며 우리 가는 게 용광로 같은 신당 아니냐고 얘기했다. 과정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정체성과 노선으로 설계된 용광로에 기득권 없이 참여하고 불순물 걸러지고 쇳물이 뽑아져 나오는 것처럼 될 것이다.”
_내달 14일이 전당대회인데 마냥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릴 순 없는 것 아닌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얘기도 있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다수도 있다. 지켜보겠다.”
_정책이나 이념 등에서 도저히 같이할 수 없는 세력이 엄존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정당사를 보면 주요 정당의 내부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이념정당이나 계급정당이 아닌 국민정당, 대중정당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여당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단계라 노선을 정리할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선 전체적 반성과 나의 개인적 반성도 있다. 국민의 요구는 이념적 개혁이 아니라 실생활의 개혁이었다. 부동산, 교육, 일자리창출 등에 팔을 걷어붙이고 현장으로 다가갔어야 했다.”
_이념적 개혁에 치중했다는 것인가.
“속도의 문제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대체입법을 받아들였으면 우리가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에너지는 한정된 것인데 한쪽에 다 쏟아버리면 다른 쪽에 배분되는 양이 작아진다. 속도조절을 하면서 배분된 적절한 에너지를 실생활의 개선에 쏟아야 했다. 나의 경우는 김대중 정부 때 정치적 현안마다 목소리를 냈다. 때론 정치적 위험부담을 감수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 들어서 대북송금 특검 때 내 목소리는 없었다.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 대연정제안 파문이 일었을 때도 각료로 일할 때라 남북문제 전념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피해 넘어간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대한 고비 길에 적극적인 비판과 반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한 뼈아픈 반성이 있다.”
_통합신당이 추구하는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결국 반(反) 한나라당 연대 아닌가.
“국민 모두 한나라당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절반은 반대한다. 노무현 정권은 새로운 시대로 가는 교량정부의 역할에 충실했다. 과거사정리, 의문사위, 친일문제 등 몇 십년 동안 손대지 못한 데 메스를 들이댔다. 그래서 다리를 건너왔는데 국민이 겁이 나서 돌아선 것이다. 통합신당은 좌편향 우편향이 아니라 가운데로 힘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5ㆍ16 이후 군사권위주의 30년과 대항하면서 형성된 양심세력을 기반으로 한다. 국민은 우리에게 끈임 없이 패배를 안겨줬다. 우리가 읽기로는 이대로 주저앉으라는 게 아니라 변화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
_통합신당에서 정 전 의장의 역할은.
“신당추진에 앞장설 생각이 없다. 낮은 자세로 뒷받침할 것이다. 누구의 주도로 신당을 하면 안 된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다. 반성을 기저에 두고 각자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경쟁할 무대가 만들어진다면 나도 한번 나서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 문제다. 지금은 우리 편을 하나로 묶는 게 지상과제다.”
_노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어려워지면서 가장 어려워진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야말로 간절히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받게 되길 갈망한다. 지난 4년 동안 나에게 세 가지의 역할이 있었다. 우리당을 만드는 데 선두에서 일조했고 두 번의 선거를 지휘했다.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장관으로 일했다. 우리당 창당은 노 대통령이 앞장선 게 아니다. 앞장선 사람의 책임이 더 큰 것이다. 제왕적으로 당을 지배하는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총선과정에서 대통령이 공천권에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제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여기에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말해왔다.”
_대선주자로서 지지도 회복 복안은.
“우리정치의 지배자는 여론조사다. 그 이상 힘이 센 것은 없다.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지지율은 민심의 온도계다. 온도를 체감한다. 왜 대중이 정동영을 대하는 눈길이 싸늘한가를 연구하고, 거기에 실천적으로 응답하겠다.”
_고건 전 총리를 어떻게 생각하나. 일각에는 두 사람이 대체재라는 시각도 있는데.
“같이 가야 할 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지금은 차이를 강조할 게 아니라 하나로 모으는데, 기본적인 노선과 정체성을 같이 할 수 있도록 배제보다는 포용과 통합을 추구하는데 전력해야 한다. 범 여권에서 유일하게 국민의 관심과 의미 있는 지지를 받는 분이기 때문에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된다. 나는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배제하고 선을 긋지 않겠다. 누구를 욕하는 건 어려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상황이 어려우면 누군가를 탓을 하게 된다. 내탓이요가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가능하면 모두가 내 탓이요 할 때 하나가 될 수 있다.”
_대학입시 완전폐지라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학부모 간담회를 해봤더니 한 주부는 남편에게 200만원 받아 100만원을 교육비에 쓴다고 했다. 달동네 학부모는 100만원이 넉 달 생활비라고 하더라. 어떤 사람은 아들과 딸 해외연수 보내고 10년간 영어공부 시키는데 11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사교육비 때문에 최상부터 하층까지 학부모들은 절규한다. 기본학제를 ‘5년(초등)_3년(중학교)_3년(고교)_5년(대학)’로 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대학에 다 보낸 뒤 표준화된 대학 교양학부 2년을 거치도록 하는 방식을 연구 중이다. 이후 2년간 성적을 토대로 본 대학이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면 된다. 다만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교양 커리큘럼을 구축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 차기정부 출범 전 이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거나 안 되면 국민공론조사, 전수조사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룬다면 3~4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할 수 있다.”
대담=유성식 정치부장
정리=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김주환 교수가 본 정동영/ '귀공자'는 선입견… "내 탓이오" 반성
정동영 전 의장은 자기 반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두루뭉실한 유감 표명과는 달랐다. 자신의 역할을 제때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반성이 이어졌다. 또한 열린우리당의 추락하는 지지율과 사분오열 양상에 대해서도 창당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명백한 책임 의식을 느낀다고도 했다. 당의 힘을 모아 실용적 개혁으로 서민 대중들의 실생활과 직결된 개혁을 이뤄냈어야 하는데, 이념 지향적인 사안에 매달리느라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5ㆍ31 지방선거 패배 후 곧 당 의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으로서의 상식과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으로 통합신당 추진 과정에서도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이 염치요 도리라고도 했다.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말은 ‘지금 여권 정치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스스로 내 탓이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함’이라는 것이다.
방송 화면이나 신문 지상을 통해서 보던 이미지와 실제 모습 사이에 치아가 많은 사람이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이 그랬다. 세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화려한 방송 스타 혹은 귀공자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보다도 어려운 시절을 겪었고 많은 고생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해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은 귀공자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며 억울해 했다. 청년 시절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기에, 요즘 시장 상인들이 “장사 안 된다”고 말할 때 자신만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인도 드물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교육 전반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신념에 찬 비전을 제시했다. 대입선발 제도를 주무르는 정도의 미봉책으로는 사교육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기존의 대입 시험 제도를 폐지하고 표준화된 대학 교양학부에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지율은 민심의 온도계”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대선주자인 그에게는 여당에 등돌린 민심을 다시 끌어안고,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쉽지 않는 과제가 놓여 있다.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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