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모두 7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이 작품이 유명해지자 한 친구가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고 한다. "이 긴 작품을 다 읽어내려면 결핵에 걸리거나 다리가 부러져서 침상에 오래 누워 있어야 할 것이다." 잃어버린>
● 단편 편향은 한국문학 발전의 장애물
요즘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해서도 차분히 소설을 읽기보다는 하루 종일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TV에 넋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일화는 역으로 현단계 한국문학이 가진 취약한 부분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즉 한국문학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음미할 수 있을 만큼의 유장한 호흡과 일정한 규모를 지닌 작품, 다시 말해 장편소설의 창작에 그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문학의 중심을 소설이 차지했다면 그 소설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장편이다. 하지만 한국문단에선 신문학 초창기부터 유독 단편소설이 강세를 보여왔고 이 현상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제도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가 존재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단편소설에 대한 정도 이상의 편향은 이제 한국문학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 최근 세계화의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한국문학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뛰어난 장편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 독자가 외국소설을 읽을 때 자연히 장편에 손이 가는 것처럼 외국 독자들도 한국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장편소설부터 찾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편소설의 진흥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범문단적으로 단편을 덜 쓰고 장편에 주력하자는 식의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까.
당연한 사실이지만 요란한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장편에 몰입하고 거기서 문학적 경제적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각종 문학상이나 정부의 지원에서 장편소설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다.
현재 우리나라엔 수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유명 문학상이 대부분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신인 공모를 제외하고는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은 극히 희소하다.
심지어 단편과 장편과 창작집을 두루 섞어 심사하는 문학상도 있는데 이는 마라톤 선수와 100미터 달리기 선수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평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아니다. 문예진흥위원회 등 관련 단체에서 창작 지원을 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 문학상, 지원도 장편에 인센티브를
지금처럼 문예지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우수작을 선정해서 지원하는 방식은 심하게 말하면 장편소설을 쓰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랜 기간 고생해서 쓴 장편소설로 받을 수 있는 초판 인세가 불과 얼마인데 단편소설 하나로 그보다 훨씬 많은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작가들이 당장 집중할 장르가 무엇일지는 자명하다.
단편소설을 열심히 잘 쓰다보면 저절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의 위기니 죽음이니 하는 추상적 주제에 매진하기보다는 한국문학을 진작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방안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남진우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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