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 이후 국내의 유엔 관련 보도가 부쩍 늘었다. 유엔의 활동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반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 이끌리고 있다.
반 총장을 낳은 한국이란 나라에 세계인이 눈길을 줌으로써 한국의 국가 인지도가 높아진 것이 첫 번째 '반기문 효과'라면, 국내에서 유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두 번째 효과라고 할 만하다. 국가 인지도 상승은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고, 세계시장에서 띠는 경제적 의미도 작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실용적 효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두 번째 '반기문 효과'다.
● 한국적 잣대의 한계 드러내
개인과 마찬가지로 나라나 국민도 먹고 살 만해지면 그에 어울리는 품격이 요구된다. 명품으로 몸을 감고, 성형수술과 다이어트로 얼굴과 몸매를 다듬어 우아한 자태를 뽐낼 수는 있다. 그러나 껍데기의 풍요는 몇 마디 주고 받지 않아 금세 밑천이 드러난다. 나라와 국민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교양과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고는 선진, 1류가 되기 어렵다.
교양과 문화의 발전에는 의식과 행동의 변화가 불가결하고, 그 전제는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한 다양한 가치에 대한 관심이다. 바깥 나라의 일이나 국제 문제에 대한 관심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소득이 2만 달러 가깝고,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라는 객관적 위상에 비추어 한국의 국제문제 관심은 대단히 낮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닫힌 자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듯, 바깥 세계에 대한 무관심은 폐쇄적 국민의식과 겹치게 마련이다. 국민의식의 폐쇄성으로 치자면 섬 나라가 따로 없다. 화교에 대한 정책적 차별은 사라졌다지만,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많은 차별을 겪고 있다.
'IMF 위기'를 거치며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들던 '국제기준'은 잠잠하고, '국부 유출' 논의가 뜨겁다. 특정 농산물의 광고 문구로나 알맞을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가 국민의식 밑바닥에 퍼져 있다. 북한이 유례 없는 폐쇄사회를 이룬 것이나 그 주체사상에 기대어 남쪽에서도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는 것이 우연해 보이지 않는다.
반 총장의 탄생은 이런 국민의식에 변화를 불러올 계기로서 기대됐다. '자랑스런 한국인'을 보는 기쁨에서라도 유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유엔의 평화ㆍ구호 활동의 대상인 지구촌 구석구석에까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미칠 수 있다.
아직 이런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우선 직업 외교관으로서 40년 가까이 국제무대를 누빈 반 총장 스스로가 '한국적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기자실을 찾는 등 한국적 관행에는 익숙했지만 유엔의 규범적 전통을 내면화하진 못했다.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한 언급으로 구미 언론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어차피 그는 바뀌겠지만 그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각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국제법 상 국가와 같은 행위주체인 유엔의 지도자를 언제까지고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 선진적 관심의 계기 삼아야
어쩌면 진정한 '반기문 효과'는 그럴 때만 찾아온다. 반 총장은 취임 후 처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우선 과제로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 등을 꼽았다.
인터넷을 뒤져서 다르푸르 사태에 대해 알아보는 국민이 늘어나야 한다. 그런 태도가 쌓이고 쌓여 국민이 한국적 의식에서 벗어나는 데 반 총장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개인적 영광을 가져다 준 나라와 국민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관훈토론회에서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유엔 사무총장의 권능과 책임은 어느 특정국에서 나오지 않으며, 유엔 사무총장은 어느 특정국의 입장을 배려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런 다짐대로 특정 국민이나 정부가 아니라 세계인을 대변한다는 자세로 당당하게 할 말을 해야 한다. 최대 국제기구 지도자로서 특수성보다 보편성을 앞세워야 하는 것은 북한 문제라고 예외일 수 없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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