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인천 남구 주안5동 인천 5공단. 대다수 공장들이 종무식을 끝내 공단은 한산했지만 산업ㆍ오락용 모니터를 생산하는 한 ㈜코텍 공장은 분주한 가운데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렸다. 제품을 싣고 나르는 직원들의 고함소리에서 작은 먼지라도 묻을까 조심스레 모니터에 터치스크린을 장착하는 직원들의 손놀림에 이르기까지 공장 내에는 활력이 가득했다.
●미국 카지노 모니터 시장 장악
코텍은 지난해 매출액 934억원에, 98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린 종업원 120명 안팎의 중소기업이다. 주력제품은 카지노 슬롯머신의 모니터로 미주지역을 중심으로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코텍은 미국 내 슬롯머신의 70%를 공급하는 IGT의 최대 납품회사로 IGT 제품 모니터의 60% 정도를 납품하고 있다. 카지노의 천국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의 슬롯머신 10대중 4대 이상이 코텍의 제품이라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최근에는 수출선 다변화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유럽 최대의 게임기 업체인 아트로닉, 일본의 코나미 등에 카지노용 모니터와 정보 전달용 모니터를 납품하고 있다. 코텍은 현재 생산제품의 98%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 400억원대를 돌파한 2000년 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수출물량이 2배 이상 늘어난 지난해에는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코텍을 게임기 모니터 시장의 세계 최강자로 성장시킨 주역은 1981년 맨손으로 회사(코텍의 전신인 동우전자)를 세운 이한구(58) 대표다.
80년대 ‘갤러그’ ‘인베이더’ 등 일본 게임들을 복사한 소프트웨어가 국내에 밀려들어 왔으나 국내에는 TV브라운관을 모니터로 활용해야 하는 등 게임기 모니터 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시장의 성장가능성을 눈여겨본 이 대표는 게임기 모니터 제조사업에 뛰어들었고, 5년 만에 내수시장의 60%를 장악했다.
‘국내 게임 모니터계의 큰 손’ 칭호를 얻었던 이 대표가 방향 전환을 꾀한 것은 1986년. 국내에서 불법 소프트웨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꼭 1년만 일본에 물건을 팔아보고 안되면 접자’는 심정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당시의 엔고 열풍을 타고 일본시장에 안착했고 이듬해인 1987년 코텍으로 상호를 바꾸고 수출기업으로 전환했다.
코텍 성장의 계기는 1996년 미국 최대 슬롯머신 회사인 IGT에 카지노용 모니터를 납품하면서 비롯됐다. 미국의 카지노는 까다로운 정부 규제 때문에 한번 특정사 모니터를 사용하면 큰 하자가 없는 한 다른 제품으로 바꾸지 않아 진입장벽이 높다. 또 24시간 운영하는 카지노의 모니터는 2년 안에 제품을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회전율도 높아 사업이 폭발적인 신장세를 보였다. 최근 2년간 슬롯머신에 장착된 브라운관 방식의 CRT 모니터들이 고부가가치의 LCD로 교체된 것도 호재였다.
윤성훈 코텍 경영지원팀장은 “미국 뿐 아니라 최근 이탈리아(2004년), 포르투갈(2005년), 프랑스(2006년) 등 유럽 각국에서도 대형카지노가 속속 합법화하고 있다”며 “새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면 회사 창립 이후 이어져온 연 20% 이상의 성장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작지만 기술력으로 승부한다
코텍은 세계 최대의 카지노 모니터 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졌지만 최근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ㆍ항공ㆍ군사용 특수모니터 생산기업으로의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20인치 기준으로 데스크톱 LCD 모니터의 개당 단가가 300~400달러 정도인 반면, 의료용 모니터는 3,000~1만 달러, 관제탑용 모니터는 3만 달러에 달한다.
2005년 독일 지멘스사와 의료용 모니터 공급계약을 하고, 1년 여의 연구ㆍ개발 기간을 거쳐 지난해부터 15인치 초음파 진단기용 모니터 생산을 시작했다. 첫해 매출은 100만 달러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올해 의료판독용, 임상용 모니터 4,5종을 추가 생산하면 4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텍 성장의 근본은 20여년 이상 한 분야에 전념하면서 쌓인 기술력 덕택이다.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코텍은 2001년 종합기술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연구인력을 크게 늘렸다. 기술개발 인력만 30명으로 생산직을 빼면 가장 비중이 크다. 지난해 매출액의 5%에 달하는 40억원을 기술개발 분야에 투자했다.
의료ㆍ항공용 특수모니터와 함께 향후 코텍을 먹여 살릴 아이템인 PID(Public Information Display: 공항 등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PC 내장 40인치급 첨단 모니터로) 개발 기술에도 열심이다. 지난해의 경우 46인치 PID 모니터를 LG, 삼성 같은 대기업보다 일찍 선보였다.
나근식 코텍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재 코텍의 기술력은 세계 정상급 기업인 벨기에의 바코사, 이탈리아의 피미사의 90% 이상 수준”이라며 “최고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이왕구 기자 fab4@hk.co.kr
■ 이한구 대표 "용꼬리보다 뱀머리가 되자"
“세계는 무한경쟁 시장입니다. 1등 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1980년 아케이드 게임용 모니터 생산을 시작으로 20여년 간 한 우물을 파온 이한구(사진) 코텍 대표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미래시장에 대한 도전정신’ 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대초 사람들이 TV모니터로 게임을 즐기고 있을 때 게임기 전용 모니터를 생산했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카지노용 모니터로 방향을 돌렸다. 요즘 카지노용 모니터 생산업체는 30여개로 늘어났지만 코텍은 이미 의료ㆍ항공ㆍ군사용 등 첨단모니터 연구ㆍ개발로 신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시장에 뛰어든 것이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미 시장이 성숙한 단계에 ‘용꼬리’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들어오는 기업들이 대다수”라며 “용꼬리보다는 뱀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장이 작더라도 1위를 노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코텍의 경우 카지노용 모니터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1위 자리에 올랐지만 앞으로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으로 1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경우 초기 개발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런 시장일수록 진입 장벽이 높아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군대 제대 후 1970년대 자동판매기 총판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는 등 시련도 겪었다”며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남들이 안 하는 신사업을 찾아 나선 게 성공의 비결이라며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기업가들의 ‘벤처정신’의 부재가 가장 아쉽다고 했다. 그는 “주가관리를 위해 어떻게 하면 IR을 잘할 수 있을까 만을 고민하는 기업이 태반”이라며 “죽기를 각오하고 못하는 일이 없는 것이라는 정도의 도전정신을 가진 기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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