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자신에게 타이르는 게 있다면, 새해가 된다고 해서 무슨 결심 따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해가 바뀐다고 무엇이 달라지던가. 여전히 해는 동쪽에서 뜨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일 뿐이고, 차는 더 막히고 세금은 늘어나기만 한다.
술을 줄이겠다거나 운동을 하겠다거나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 같은 거 한두 번 했던가. 술? 마시게 되면 마시고 아니면 말지. 운동이야 하게 되면 하지. 담배? 싫어지면 끊지. 그런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다가 무엇에 홀린 듯이 동해안으로 떠난 것이 지난해 마지막 날이었다.
● 새해 해돋이 보러 갔던 길의 짜증
동해 바다의 해돋이를 보며 한 해를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짓거리인지를 아는 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는 길이 평상시보다 한 시간여 더 걸린 것은 참아줄 만한 교통체증이었다. 그러나 호텔측의 권유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나간 속초해수욕장의 해돋이 행사는 이게 무슨 난장판인가 싶었다.
한여름의 피서철처럼 해변을 가득 메운 인파가 저마다 들고 서서 마구 쏘아대는 폭죽, 게다가 그 이른 아침에 어디로 거는지 저마다 떠들어대는 휴대전화 소리에 새해를 맞는 경건함 따위는 이미 찾아볼 수도 없다.
아침을 먹고 낙산사로 향했지만 그 길도 차가 움직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니다 싶어 서둘러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지만, 연휴가 끝나는 날 오후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또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일이었던가. 설악산 국립공원을 빠져나와 미시령 터널 입구에 오는데 2시간이 걸렸다. 10여분이면 되는 거리였다.
거기서부터 구도로를 타고 미시령 정상의 휴게소에 도착하는데 4시간, 차는 걷는 것보다도 더 느리게 움직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휴게소의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마다 휴대전화에 매달려 희희낙락이었다.
아무도 화를 내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는데다가 오히려 화장실에서 일을 보면서까지 "음 나 지금 화장실에 앉아 있어. 차가 드럽게 막혀"라고 전화들을 해대지 않는가. 뱀처럼 구불구불 빛의 줄기를 이루며 미시령을 오르고 있는 차들의 행렬과 울산바위 밑에 도사린 어둠 속에서 내 새해 첫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외국을 다녀오다가 인천공항에서 서울까지 오는 한 시간 남짓한 동안 내내 버스 안을 내 집인 양 앞뒤에서 해대는 휴대전화 소리에 멀미가 나서 토할 뻔한 일이 떠올랐다.
공공장소라면 어디든 눈에 띄는 것이 금연 표지판이다. 담배만이 죄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붉은색 원 안에 휴대전화를 그려 넣고 거기에 사선을 그어 '휴대전화 사용 금지구역' 표지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서울의 집에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이 10시간, 그러나 그 길 위에서의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았다. 가고 오는 길에 만난 인제군 북면 용대리 마을의 간판은 작은 희망의 시작이었다.
● 용대리의 아름다운 거리 간판에 위안
용대리는 국내 최대의 황태 덕장이 있는 마을로 국내에서 소비되는 황태의 70%가 여기서 생산된다. 이 마을의 간판은 절대 원색을 쓰지 않고 크기도 자그마했다. 황태 판매소는 간판 위에 황태를 조형물로 얹었는가 하면 민박집은 또 그 나름대로 집 모양의 상징물을 아담하게 담고 있었다.
길가에 끊임없이 이어지던 울긋불긋하고 볼썽사납게 크기만 한 간판들이 일시에 사라지면서 다가서는 용대리의 간판들,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간판들의 거리를 지나면서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가능성이었다.
서울의 대학로 거리나 하남시의 미사리 카페촌 같은 곳에서부터 이렇게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속초에서 서울까지 10시간의 교통체증으로 끝난 내 새해맞이는, 그렇게 해서 마침내는 희망을 만나는 길이 되었다.
한수산 소설가ㆍ세종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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