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4층. 김종인 의원(67)은 요즘 집무실에서 창 밖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처럼 암울하게 느낀 적이 없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빨리 극복해야겠다는 각오로 희망을 잃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실의에 찬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발전도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과거보다 더 불안합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돼 버렸는지 그저 답답하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용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겼지요.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면 뭔가 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겁니다. 많은 국민들이 표를 몰아준 그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금 이렇게 지지율 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 '정권의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여론에 괘념치 않겠다'고 하는 노대통령을 그는 안타까워 했다.
"이 정권은 선거에서 완전히 망하고도 뭘 모르고 있습니다. 봅시다. 1958년 4대국회 때 서울에서 자유당이 전멸했어요. 대통령이 스스로 그 의미를 알고 정책을 했으면 3.15부정선거를 하지 않아도 됐고 4.19도 없었겠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도 3선한 지 반년 만에 유신조치를 취했고 이 때문에 78년 10대 국회에서 여당이 크게 패했습니다. 그 여파로 10.26이 난 거지요. 85년 12대 국회에서는 어땠습니까. 민정당이 서울에서 패한 뒤 각계의 요구를 무시하고 4.13 호헌선언을 하면서 6.10항쟁이 났습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지도는 8%였습니다. 이 정권은 총선에서 이긴 뒤 있었던 각종 보궐선거에서 40대0이란 참패를 당했어요. 그런데도 반성이 없고 개선이 없습니다."
현 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은 논리적이고 직설적이다. 김 의원은 특히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국회의원보다는 90년 당시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5.8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조치'를 내놓은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더 유명하다.
"지금 정권의 부동산문제는 2001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어요. 그해 미국에서 9.11사태가 나자 정부는 세계 경제가 갑자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불황 시나리오'를 내세워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서둘렀습니다. IMF이후 진행되던 구조개혁은 당시부터 완전히 실종됐지요. (그는 2002년 4월11일자 한국일보에 '블랙먼데이와 9.11'이란 제목의 칼럼을 실어 경기부양에 서두르는 정부를 지적했었다. '은행 몇 개를 구조조정 한 뒤 그 맛에 취해 본격 경기부양으로 선회한 98년이나 9.11사태에 호들갑을 떨면서 총력 경기부양을 편 것은 깊은 인식 없이 성급했던 좋은 예이며 이는 또 다른 경제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기를 살리는 방법으로 정부가 우선 택하는 것은 건설경기 활성화인데 이건 뭘 뜻합니까. 부동산 투기를 어느 정도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2002년 말부터 투기억제조항들이 풀리기 시작했지요. 경기활성화를 위한 또 다른 조치는 소비를 살리자는 것이었고 이것이 카드 남발로 이어졌습니다. 소비를 인위적으로 살리겠다고 길바닥에서 돈을 나눠준 것과 다름없는 조치를 한 것인데 이 때문에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후 폭풍을 초래했습니다. 그렇게 2003년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결국 현 정부는 부동산투기와 신용불량자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신용불량자와 팽팽해진 부동산 투기 가능성을 갖고 이 정권은 시작을 했습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처음부터 이를 치유하는 정책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이 문제를 크게 보지 않았지요. 2003년 봄,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면서 카드사 부실이 시작됐습니다. 그걸 정리한다고 한참 헤매다 보니까 경기에 이상 징후가 생겼고 신용불량자 때문에 금리를 경기에 맞게 조절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미국도 금리를 계속 내리는 추세여서 금리인하는 대세가 됐는데 결국 실질금리가 보장되지 않는 수준까지 떨어졌지요. 그렇지 않아도 금융자산보다 실물자산을 선호하는 우리 국민인데 돈이 부동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리는 내려가는데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고 빚만 갚으니, 은행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 즉 주택담보대출에 주력했지요. 너도나도 은행 돈을 빌려 부동산에 쌓아두는 투기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 겁니다. 정부는 2005년 8월에 가서야 부랴부랴 세제쪽에 촛점을 맞춘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내놨지만 이미 불은 붙은 뒤였습니다."
- 조세정책이 부동산투기 억제책으로 적절한지요.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은 나라는 없어요. 세금이란 정부가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지 부동산 대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겠다고 나섰다가 안 잡히면 계속 올릴 겁니까? 거꾸로 보면 세금만 내면 부동산 투기를 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이론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세금을 강화해 부동산시장에 충격을 주면 일시적으로는 주춤합니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이 이를 흡수하고 나면 세금이 부과된 만큼 가격이 더 오릅니다. 이는 조세전가이론이란 이름으로 입증된 것인데 오른 세금은 아파트와 전월세 값 인상을 몰고 오는 것이지요. 이론과 현실 모두를 무시한 발상입니다.
- 종부세에 대해서도 정부와 다른 견해를 갖고 계시겠군요.
"세금이 헌법에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충분히 따져보지도 않고 내놓은 조치가 바로 종부세입니다. 종부세는 앞으로 헌법재판소가 결정할 문제입니다만 세금을 갖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런 정책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강남에 살고 싶은데 세금을 잔뜩 매겨서 떠나라고 하는 꼴이지요. (그의 집은 종로구 구기동 빌라로 종부세 대상 주택이 아니다.) 세금은 재산의 원본을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세금을 내기 위해 재산을 축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세부과의 원칙 중 하나입니다. 종부세는 의회 스스로 국민의 부담을 의원 입법한 초유의 일입니다. 돈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서 세금을 걷자는 것인지, 부동산을 잡자는 것인지 구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부동산 시장에 또 다른 혼란요인이 되고 또 하나의 분열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 부동산문제가 사회 전반적인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씀 이신가요.
" 부동산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정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지와 주택은 수요 공급만으로 안됩니다. 토지는 공급이 제한된 상품인데 이를 수요 공급법칙으로 해결하려 드니 길을 못찾고 있는 겁니다. 더구나 이 정부 들어서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풀었습니까. 보상금으로 풀린 수십조원이 강남 수도권으로 몰려든 것이 오늘날 부동산 문제의 현실입니다. 부동산시장이 이렇게 불안하면 한국에서는 어떤 정책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90년 토지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5.8대책을 내놓으면서 '또 한번 투기가 만연되면 한국경제는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지금이 그렇습니다. 보세요. 분양가 때문에 아파트와 전월세 값이 올라가고 있지요. 게다가 세금을 자꾸 때리니 그 세금은 전가됩니다. 전월세로 사는 근로자는 계속 값이 오르니 잠자리가 불안해 집니다. 잠자리가 불안하면 임금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지요.
- 현재 일고 있는 부동산 버블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논쟁거리도 아닙니다. 버블이 아니면 투기가 아니지요. 투기에 의한 것은 버블이고 버블이라면 언제든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대책이 갈피를 못 잡게 보면 곧 터집니다. 길게 봐야 2~3년입니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그래도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정부의 정책은 정치상황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선을 앞둔 정치상황으로 미루어 중장기 경제기반을 구축할 단호한 정책을 펴기 어렵습니다. 정치권 역시 부동산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기를 걱정하고 있는데 경기 때문에 내놓는 대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사회간접자본 등으로 경기진작을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이제 재정으로 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은 거의 없습니다. 괜히 재정 잘못했다가 빚만 지고 맙니다. 일본이 90년 초부터 2000년 초까지 정부의 부채비율을 140% 이상으로 올리면서도 돈만 허비했지요. 결국 경기하면 건설이고 정부의 정책도 뾰족하지 않아 부동산은 또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렇게 오르는데 버블이 아니라면 투기가 아닙니다. 버블이 없다는데 왜 투기라고 합니까. 말을 하려면 일관돼야 하고 국민을 현혹시켜서는 안됩니다. 솔직히 강남 아파트 한평에 5000만원씩 나가는 이런 현상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겁니까? 지금 부동산은 당연히 투기장이고 버블입니다."
- 부동산 시장 불안이 경제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정책실패가 낳은 부산물이 부동산 시장 불안입니다. 잘못된 금리정책이 있고 잘못한 국토개발 정책이 있고, 잘못 알고 도입한 세제가 더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정책 잘못으로 빚어진 어려움을 가계 기업 모두 떠 안고 있는 것이고 전 국민이 불안해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져 4%대인데 이대로 가면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 지 모를 일입니다. 경제정책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만 대증요법으로 그때그때 덤벼드니 하나 해결하면 다른 곳에서 막히고 문제가 생깁니다. 유동성은 풍부하고 금리는 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 좀처럼 살아나지 歌?있는 기업투자에 대해 좀더 말씀해 주시지요.
"수익모델이 없어서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겁니다. 중소기업은 중국이라는 이웃이 생겨 임금으로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IMF이후 지난 10년간 우리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동안 중국이 따라 붙어 특수한 분야 몇을 빼고는 우리가 앞서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신기술 신상품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노동투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국내에서는 투자를 하지 않지만 해외에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어디에 하든 이윤이 있는 곳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부는 규제를 대폭 완화해 국내 투자를 살리겠다고 합니다.
"기업환경을 좋게 만들겠다고 규제완화를 밤낮 얘기하지만 사실 과거에 비해서는 규제가 많이 완화됐습니다. 그렇게 규제가 많다던 과거에도 기업들은 투자를 했습니다.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규제 때문이 아니란 얘기지요. 기업들이 지금 규제완화를 얘기하는 것은 이런 기회에 규제라도 없애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규제완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알아야 해요. 정부의 기능이 무엇이고 어디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자유화와 민영화 세계화라는 세가지 화(化)가 안되면 오히려 혼란이 온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 미국과 추진중인 자유무역협정 역시 논란입니다.
"FTA는 글로벌 체제아래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안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홍보해서 마치 이것만 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금방 달라질 것 같은 그런 착각을 하도록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FTA를 처음 한 나라들이 유럽연합입니다. 자유무역 했다고 소속된 유럽 국가들의 경제가 특별하게 좋아졌다고 보지는 않아요. 개방이 대세이니 우리 역시 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강자와 약자간 협상에서 약자의 이익은 많지 않아요. 세상을 모두 순리대로 보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인데 자본주의 시장원리가 자연법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지요."
- 기업이나 금융부문의 경쟁력은 어떻게 보십니까.
"IMF 이후 경쟁력 강화에 대한 말은 많이 했으나 실질적으로 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금융부실이 해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기관으로서 국제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중소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빨리 돼야 하나 다른 정책목표 때문에 안되고 있지요. 그래서 전체 중소기업의 40% 가까이는 실질적인 이윤을 못내 은행이 계속해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은 쉽사리 기업을 정리할 수도 없는데다 문을 닫게 하려면 책임문제가 따르니까 선뜻 못나서고 있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시장원리를 적용할 때는 철저히 해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경제 정책은 핵심을 보고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경제가 안고있는 기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지요. 성장률 등 거시지표는 순간적으로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부채비율 등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구조적으로 썩었어도 은행이 유지시켜 주면 사는 것이 현실이고 이러다가는 금융이고 기업이고 다 망하게 됩니다. "
- 재벌문제에 대해 유독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 오셨는데.
"한국경제의 외형을 확대하는데 기여한 재벌의 공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재벌이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는 다른 의견입니다. 유럽에는 재벌이 없습니다. 우리 경제도 이제 탄탄한 전문기업이 바탕이 되는 그런 구조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 재벌구조로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특화되기 어렵습니다. 현재 국제 철강시장 구조로 미루어 포철이 굉장히 위험하게 됩니다. 70년대와 다릅니다. 현대가 일관제철을 한다고 나섰는데 포철도 살고 현대도 살려면 앞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겁니다."
- 양극화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됐어요. 양극화는 소득과 분배의 격차가 심해졌다는 것인데 소득분배를 해소할 수단이 없습니다. 노동시장에서 기업과 근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적인 해소방안인데 비정규적이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어서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해결하겠다는 말이 나옵니까. 대책도 못 내놓을 거면서 대통령이 나서 양극화를 강조하고 있으니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지요. 지난해 연두회견에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내세운 정책은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부동산 세금도 부동산 잡자고 한 것이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은 아닙니다."
-현 정부가 남은 기간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어디라고 보십니까.
"남은 시간 동안 문제를 더 확산시키지 않고 차라리 이대로라도 畸綬?이 정부가 할 일을 했다고 봅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인데 이미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대선을 겨냥해 인심을 쓰려는 법안을 자꾸 내놓으면 안됩니다. 미래에 얼마만한 돈이 들어갈 지 모르는 법안들이 여러 개 올라와 있습니다. 복지와 관련된 법안들이 대표적인데 재정적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이 법안에 반대하면 반대한다고 비난들이 높은데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재정부담을 고려하지 않는 법안들은 나중에 크게 문제를 일으킵니다. 한번 잘못 도입하면 그 다음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 대선을 앞두고 눈여겨 봐야할 점은 무엇입니까.
"필요 없는 말 하지말고 우리 경제의 현실을 냉엄하게 보고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예컨대 노동이다 그러면 노동을 해결할 자신의 구상을 갖고 또 이를 해결할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과거 추진하던 노동 금융 기업 공공 등 4대 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과거에도 많이 봤습니다만 당선되고 나면 붕 떠서 그저 시간만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 영국의 대처 전 총리를 훌륭한 지도자로 말씀 하시는데.
"마가렛 대처가 그저 영국의 오늘을 이끈 게 아닙니다. 대처는 옥스퍼드대 화학과를 나왔는데 식품회사에서 일하다 다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1959년에 처음으로 하원의원이 됐어요. 최초의 여성정치인으로 제대로 해 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경제공부를 했습니다. 대처는 하이예크(비엔나 태생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자유경쟁원리가 법의 지배 아래 적절히 보장된다면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국부가 증진된다고 봤다.)를 터득할 정도로 경제공부를 많이 했어요. 당초 총리가 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당시 보수당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조셉 페이스가 언론에 말 실수를 하는 바람에 후보에서 탈락을 했지요. 그래서 대처가 나서 78년 당수가 되고 79년 총리가 됐는데 평소 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니까 당수도 되고 총리로서 철의 여인이란 이름까지 갖게 됐지요. 영국경제의 병폐가 무엇인지, 각 당의 정강정책은 무엇인지 까지 다 파악한 준비된 지도자로 출발을 했던 겁니다. 우리 역시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음 대통령은 정말로 탐욕스럽지 않고, 주변이 번잡하지 않으며 특정 집단과 지나치게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훌륭하니까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를 이 정도로 올려놓은 것은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고 의식의 변화라고 봅니다. 참을 때 참을 줄 알고 흥분할 때 흥분할 줄 아는 대단한 심성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믿을 사람은 우리 국민밖에 없습니다."
●김종인 의원은…6공 경제수석시절 反재벌 주장 '고집불통' 별명 얻어
김종인 의원은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가인이 대쪽 법조인으로 유명한 것 못지않게 김의원 역시 고집불통이란 별명을 얻으면서도 정말로 고집스럽게 반재벌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직선적인 성격에 원리원칙주의자로 6공 경제수석 시절에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친인척과 마찰을 빚기도 했고 정권말기 당시 노대통령이 추진하던 이동통신 사업에 대해서는 '국민의 의혹을 살 수 있으니 진행하면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 뮌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73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다. 김의원이 정계에 입문한 것은 80년. 당시 신 군부의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으로 발을 디딘 것을 계기로 5공 출범과 함께 정치활동을 시작해 11,12대 전국구 의원을 했고 6공 때에는 보사부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이후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DJ정부시절에도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 물망에 올랐으나 그의 강직한 성격이 대통령 측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현 정권 출범 초기에도 하마평이 나돌았으나 결국 참여하지 않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 전국구로 당선, 현재 17대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그는 의정활동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국민적 조화가 바로 그것이다. 북핵 문제를 처리하면서 예상되는 동북아의 정세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소외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경제가 활력을 갖고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나 갈래갈래 나뉜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가 보다 큰 그의 관심인 것이다.
그는 특히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떨어질 지 모른다는 점도 지적한다. 남북의 정치적 변화가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북한이 중국에 진 빚은 고스란히 통일 한국의 몫이라는 것. 북한의 빚은 백두산까지 담보로 잡힐 정도라는 것이 그의 추정이다. 요즘은 감기 때문에 가급적 술자리를 피하고 있지만 술 실력만큼은 여전해 좋아하는 자리에서는 폭탄주 여섯 일곱 잔은 보통. 그만큼 건강을 자신하고 있다.
●약력
1940년 전남 광주 출생. 현 주소는 종로구 구기동.
중앙고, 외대,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박사
73~88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81~88 11,12대 국회의원
89~90년 보사부장관
90~92년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
92~94 14대 국회의원
2003~04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건국대 경제학 석좌교수
92~ 현재 대한 발전전략 연구원 이사장
2004~ 현재 17대 국회의원(민주당)
대담= 이종재 부국장 jchong77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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