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소나기 퍼붓듯 하는 주택담보 대출규제에 대해 "호흡이 너무 급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최근 정책들이 카드대란에 이어 금융시장 마비를 촉발시킨 2000년대초의 무더기 신용카드 규제 정책을 연상시키는 만큼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ㆍ15대책'으로 공급확대 방안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것을 계기로 이제는 넘치는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지급준비율을 인상한데 이어 올해 "유연한 금리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콜금리 목표치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의 대출자산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상향조정했고, 국민은행을 필두로 한 은행권은 3일부터 모든 주택에 대해 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로 낮춰 적용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당국은 이 규제를 보험사, 상호저축은행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변동금리 대출의 이자를 높여 고정금리형 대출이 확대되도록 하는 한편, 주택신보에 대한 금융기관 출연금을 인상하면서 시중에 풀린 돈을 대거 흡수하기로 했다.
물론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해소하고, 부동자금도 흡수해 자금시장을 정상화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의 강도나 속도 측면에서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고강도 규제는 여러 측면에서 2001년과 2002년의 신용카드 규제 강화를 연상시킨다. 금감원은 2001년 2월 '신용카드 회원유치 과당경쟁 방지방안'과 5월 '신용카드업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이후 2002년까지 카드사 대손충당금 적립비율 상향조정, 연체율 10% 상회 때 적기시정조치 발동, 카드사 현금대출 비중 2003년말까지 50% 축소 의무화, 길거리 회원모집 금지 등 강도높은 규제 방안들이 속속 시행됐다. 당시 신용 카드와 관련한 규제는 매일 한건씩 나올 만큼 러시를 이뤘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들은 카드사들의 경영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결국 LG카드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면서 카드대란을 촉발시켰다.
카드대란의 근본 원인은 99년 5월 현금서비스 한도 철폐 이후의 업계 과당경쟁과 정부 규제의 실기(失期)에 있다. 여기에 정부가 옥석을 구분하지 않은 채 때늦은 무더기 규제로 카드사들의 목줄을 조인 부분도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왔다. 카드대란은 결국 가계 신용경색과 신용불량자 양산, 급속한 소비 침체를 불러왔고 국가경제는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최근의 강도높은 대출규제 정책에 대해서도 "카드사태 때와 같은 '교각살우(소의 뿔 모양을 잡으려다 소를 죽임)'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집값을 잡으려고 지나친 돈줄죄기에 나섰다가 집값이 폭락할 경우 가계 신용경색 →소비 위축 →경기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원은 "과거 일본은 대출총량규제를 비롯한 규제들을 일시에 추진하면서 주택가격이 급락했다"며 "주택금융 대출 규제 강화와 금리 인상이 동시 다발적으로 빠르게 시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완만한 속도로 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정책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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