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에만 해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주변은 항상 시끌벅적하고 어지러웠다. 세종문화회관 산하단체 운영을 비난하는 각종 현수막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노조원들은 천막 안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조용해졌다. 현수막과 천막도 사라졌고, ‘투쟁’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지금까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접점을 찾을 수 없었던 서울시의 골칫거리 하나가 말끔히 해결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주역이 바로 김주성(60) 사장이다.
“출근 첫날 노조원들이 야유를 퍼붓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직원들 모아놓고 조회하면 서로 웃으면서 즐겁게 생활합니다”
김 사장은 노사갈등 해소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믿음’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코오롱 부회장을 지낸 전문 경영인으로 구조조정 하지 않아도 엉망진창이 된 회관을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이를 위해 무조건 서로 믿고 노력하자고 설득했죠”
실제 그는 지난해 첨예하게 대립하던 임금협상을 타결하고 예술단원의 평가제 등을 놓고 분열돼 있던 예술단원과 사무국 직원 모두를 상대로 등산대회, 합숙교육 등을 통해 화합을 이끌어 냈다. “취임 초기 사측을 대표하는 사무국을 질타하니까 노조측이 자발적으로 현수막을 내렸어요. 그 당시 한 경비원이 철거하는 것을 보고 다른 현수막을 다는지 오해해 말렸다고 하더군요. 허허”
노력의 결과는 공연에서 나타났다. 노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단원의 적극적 호응으로 노인복지시설 등 저소득층을 찾아가는 ‘함께해요 나눔 예술’ 횟수가 240회로 두 배 들어 났고, 올해에는 시민 누구나 1,000원만 내면 한 달에 한 번 볼 수 있는 ‘천원의 행복’도 기획할 수 있게 된 것.
또 음향 개선 지적을 받아온 컨벤션센터를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보수해 세종체임버홀(443석)을 개관하고, 소극장 역시 현재 소규모 오페라 등을 공연할 수 있는 750석 규모의 공간으로 리모델링, 예술단원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
노조도 김 사장의 1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공무원, 예술인 출신이 아닌 전문 경영인이 들어오면서 사무국을 중심으로 한 내부 조직이 긴장감 있게 돌아가 회관 자체에 활기가 돈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던 노조가 김 사장 취임 이후 회관의 당당한 일원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며 “사무국과 노조의 상호 불신으로 무너진 조직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회관이 강북에 대규모 공연장이 없다는 독과점 상황을 악용, 장삿속만 차린다는 공연계의 따가운 눈총도 받고 있다. 수익 개선을 위해 지난해 티켓매출액의 일부를 추가 비용으로 납부하는 수익배분제를 도입한데 이어 올해부터 대관료를 인상한 것으로, 올해 대관료 수입은 지난해 35억원보다 증가한 42억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경영자로서의 소신을 밝혔다. 그는 “순수예술을 제외한 뮤지컬, 대중가수 공연 가운데 1주일 이상인 장기공연에만 수익배분제가 도입된다”며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서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은 경영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또한 “수익을 올리는 것 자체가 공익성이 확보되는 것”이라며 “수익을 극대화하면 예산으로 지원 받는 세금이 줄어들고, 시민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서비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올해를 ‘창의를 바탕으로 한 변화와 혁신’의 해로 정했다. “지난해가 밀어붙이는 경영이었다면 올해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간접 경영의 해가 될 겁니다.
김 사장은 상호 신뢰를 회복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예술회관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의 랜드 마크로 발전시킬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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