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워싱턴에서 송민순 외교장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그 동안 파열음을 냈던 한미관계를 봉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이 감지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카오의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와 관련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짜고 치는 고스톱’에 비유했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송 장관은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과의 회담이 끝난 뒤 BDA 문제에 대해 “북한이 이 사안의 우선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6자회담의 맥락 속에서 다뤄지되 9ㆍ19 공동성명 이행과 연계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에 전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송 장관은 이어 “북한이 불법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다른 국가들에게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구상을 갖고 나오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에 재발방지를 촉구했다.
BDA 뿐만 아니라 지난해말 성과 없이 끝난 6자회담에서 북한에 전달된 미국의 제안에 대해서도 한국의 태도는 ‘완전 동조’였다. 송 장관 등은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돌파구를 열수 있는 제안”, “한미 양국간 협력에 의한 제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북한이 이 제안에 대해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반응을 보일 차례”라며 화살을 북한에 돌렸다. 이런 분위기만을 놓고 본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는 충분히 회복됐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송 장관을 수행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그 이유와 관련, “6자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미국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해도 실제 의지가 의심스러웠으나 이제는 “미국이 외교적 자산을 아주 확실하게 투입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천 본부장은 “이제 미국 태도는 전혀 변수가 안되고 유일하게 남은 변수는 북한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한미 공조 연출에 대해서는 “미국은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송 장관이 누구보다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또 미국 제안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 어느 정도 확인됐기 때문에 한국측이 자신감을 갖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한미 공조를 과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송 장관 방미 기간에 미 국무부에서는 “1월말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호가 있다”는 발언이 나왔다. 송 장관은 라이스 장관과 만난 뒤 “북한이 조만간 반응을 보여야 하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