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 김려실 지음 / 삼인 발행ㆍ352쪽ㆍ1만8,000원
식민지 시기 한국 영화사는 주로 항일 민족영화에 초점을 맞춰 기술됐다. 이는 수탈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에 근거해 당시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항일-친일’ ‘민족적 전통-종속적 모방’ ‘리얼리즘-신파 멜로드라마’ 식의 이항대립이 해방 이전의 조선영화를 분석하는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1919년 이래 1945년까지 제작된 조선영화는 약 180편으로 추산된다. 한국전쟁 등으로 이 영화들의 필름은 대부분 소실됐고, 당시 영화사는 2차 자료를 통해 복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의 필름 보존기관인 고스필모폰드에서 1930년대 조선영화 <심청> 과 <어화> 의 일부가 발견됐고, 이후 일본과 중국에서 총 12편의 필름을 찾았다. 저자는 이 중 10편을 분석, 한국 영화사를 기술하는 위의 패러다임을 실증적으로 비판한다. 어화> 심청>
제목처럼 저자는 일본 ‘제국’이 영화에 무엇을 ‘투사’하려 했는지, 이를 ‘식민지’ 관객들은 무엇을 ‘투영’해 수용했는지 밝히려 한다. 이를 위해 당시 걸작으로 불리는 나운규의 <아리랑> (1926)이 어떤 과정을 거쳐 민족영화의 상징으로 인식됐는지를 살펴본다. 아리랑>
<아리랑> 이후에 나온 영화 소설 <아리랑> 과 영화 관계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저자는 영화가 애초 항일 민족영화로 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영화가 4년간 전국에서 순회 상영되면서 관객들이 피식민지민의 분노와 비애 등을 투영시켜 항일 민족영화로 상상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일제가 검열과 감독을 통해 조선영화를 자국영화의 범주에 두려 했지만, 조선인 관객의 감성이나 상상력까지 통제할 순 없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리랑> 아리랑>
이 밖에 당시 영화 속 기생은 우리 민족에 대한 은유이며, 친일 영화로 분류됐던 <집 없는 천사> 를 리얼리즘의 수작이라고 언급하는 등 기존의 ‘항일-친일’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나 조선영화에 대한 외연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집>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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