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 초인종 소리에/얼른 문을 열었더니/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문 앞에 서 계셨죠/(중략…)/어쩐지 오늘/아빠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중략…)/아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잖아요/아빠 힘내세요/우리가 있어요.”
‘국민동요’로 사랑을 받고 있는 <아빠 힘내세요> 의 작곡가 한수성(51ㆍ남성초교 교사)씨는 IMF외환위기를 맞은 지 꼭 10년째인 요즘 감회가 남다르다. 아빠>
“지금 생각해도 참 공교로운 일이었습니다. 무슨 영감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아빠들을 위한 노래를 하나 만들어 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IMF가 왔습니다.”
그가 이 노래를 발표한 것은 1997년 5월에 열린 MBC창작동요제에서였다. IMF가 닥치기 6개월 전이었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어찌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978년 교대 졸업후 동요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94년 전 재산을 털어서 녹음실을 인수했는데 건물주인이 부도가 나면서 건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전세금도 날아갔습니다. ‘한 푼 두 푼’ 그렇게 모은 돈이 한 순간에 넘어가니 눈앞이 캄캄했죠.”
그는 아파트를 즉시 처분하고 차가운 겨울, 가족들과 단칸방을 얻었다. 유난히도 춥던 96년 12월, 온 가족이 밤마다 한방에 모여서 노래 만들기에 매달렸다. 오선지의 한 칸 한 칸을 눈물로 채우며 만들어낸 작품이 <아빠 힘내세요> 였다. 아빠>
작곡은 한씨가 직접 맡았고, 노랫말은 부인 권연순(53)씨가 만들었다. 당시 예술고를 다니던 아들 지웅(29)씨는 편곡을 했다. 한씨는 87년 대학가요제에 나갔던 경력이 있으며, 이 부부는 89년 ‘연날리기’로 MBC창작동요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시절이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모여 노래를 만들면서 나름대로는 슬기롭게 보낸 거죠.”
어느 새 눈가에 이슬이 맺힌 부인 권씨도 한마디 거들었다. “서로를 믿었어요. 그게 가족이잖아요. 저희처럼 어려운 이들을 떠올리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갔는데 어느새 가사가 됐지 뭐에요.”
그러나 막상 동요제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IMF 광풍이 몰아쳤고 잊혀지는 듯 했다. 그후 유치원 재롱잔치 등을 통해 이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결정적으로 2004년 9월 카드회사 광고CF 삽입곡이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온 지 7년 만이다.
“노래도 거의 잊혀질 즈음, TV를 통해 나오는 선율을 듣는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흥얼거리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처진 어깨가 펴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 후 이 노래는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나 퇴근한 아빠를 위해 부르는 단골노래가 됐다. 휴대폰 벨소리로 20만건이나 다운 받아갈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한씨는 현재 개인음반 2장을 냈다. 작곡한 노래는 100여 곡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IMF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아빠 힘내세요> 2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가족의 사랑을 노래하는 <오뚜기처럼> <아빠 제발(금연송)> <놀이동산> 등입니다. 동요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전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놀이동산> 아빠> 오뚜기처럼> 아빠>
올해에도 대한민국 ‘아빠들’이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 그는 잠시도 피아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부산=글ㆍ사진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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