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공식업무 첫날인 2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사형집행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서방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일부에서는 반 총장이 상대의 허점을 노려 공격적 질문을 하는 취재진들의 이른바 ‘‘슬랩샷(slap shot)’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이스하키 용어인 ‘슬랩샷’은 스틱을 최대한 뒤로 빼서 강하게 내려치는 강력한 샷. 기자들 사이에서는 의도적으로 취재원에게 던지는 도발적 질문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첫 슬랩샷은 이날 출근날 아침에 나온 “사담 후세인은 처형됐어야만 했느냐”는 질문. 반 총장은 “후세인은 이라크 국민에 대한 잔학 범죄의 책임이 있으며 우리는 그 범죄의 희생자들을 절대로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한 뒤 “사형제도의 적용 여부는 각 국가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반 총장의 이 같은 답변은 인권 차원에서 사형제도에 반대해온 유엔의 공식 입장과는 약간 다르다. 특히 아스라프 콰지 유엔 이라크 특사가 후세인 처형 직후, “단죄를 원하는 이라크의 국민정서를 이해한다”면서도 “유엔은 이번 처형을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낸 뒤여서 더욱 미묘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은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라며 “후세인 처형 문제에 대한 반 총장의 답변은 그가 아직 한국 외무장관에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변신을 완료하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슬랩샷은 “신을 믿느냐?”는 질문. 지난해 총장 당선 직후 첫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 질문은 반 총장의 이름 끝자인 ‘문(moon)’이 통일교 문선명 총재를 연상시키면서 당시 반 후보가 통일교 신자라는 헛소문 때문에 나온 것이다. 종교가 없는 반 총장은 다소 난감해 하면서 “차기 사무총장으로서 특정 종교나 신에 관한 견해를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며 가까스로 함정을 벗어났다.
총장 취임선서 후 기자회견에서의 ‘프렌치 해프닝(French Happening)’도 대표적인 예. 당시 취임연설에 일부러 프랑스어 대목을 삽입하는 등 외교 통용어로서 프랑스어에 대해 ‘성의’를 보였던 반 장관에게 한 기자가 느닷없이 캐나다 억양이 섞인 프랑스어로 “유엔에서 프랑스어가 왜 통용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반 장관이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언론에선 이를 두고 ‘반 총장의 불어, 낙제(flunked) 하다’라고 보도했다.
유엔만 30년 이상 취재해온 한 미국 기자는 “‘기름 뱀장어(slippery eelㆍ난감한 질문을 잘 빠져나간다는 의미로 반 총장에게 붙여진 별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슬랩샷이 계속되는 것 같다”며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