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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씨네다이어리/ 미워할 수 없는 상혼

입력
2007.01.0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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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가 4일 400만 관객을 넘어선다. 지난해 추석 시즌에 흥행 바람을 일으킨 <타짜> 이후 최고 성적이다. 12월14일 개봉해 크리스마스 대작과 연말 영화들의 공세를 넘기고 거둔 결과라 더 의미가 있다. 개봉 4주차인데도 극장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흥행의 종착역을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사실 지난해 12월 <미녀는…> 의 시사회를 앞두고 좌석에 앉아 슬쩍 혀를 찼었다. “95㎏의 ‘뚱녀’가 성형수술로 48㎏의 ‘쭉빵녀’로 둔갑한다니… 여성들의 판타지를 아주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얄팍한 장삿속, 보인다 보여.”

그리고 영화를 봤다. 웃어도 되는 장면에서 “불순한 의도에 넘어가지 않겠다”며 애써 저항했다. 하지만 김아중의 뚱보 연기에 어느새 ‘피식’ 웃음이 입 사이를 비져나왔고, 완고하게 끼고있던 팔짱은 스르르 풀렸다. 그렇게 조금씩 무장해제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 안에 불이 켜졌을 때 본래의 장삿속 운운 하던 근엄한 자세가 돌아왔다. “아무리 웃겨도 은근히 성형을 권장하고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겨서야 되겠어?” 무엇보다 주인공이 뚱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를 웃음의 재료로 삼은 상혼이 거슬렸다. 엎치락뒤치락하는 감정의 반전을 심하게 겪어서일까. <미녀는 괴로워> 의 흥행성과 작품성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자꾸 영화내용을 되새길수록 <미녀는…> 의 ‘당당한 비굴함’이 마음을 움직였다. ‘팔등신 미녀는 명품이고 뚱보는 반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에서라면 몸에 칼을 대고 자신 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너그럽게 봐줄만하지 않냐는 영화의 속삭임이 뒤늦게 들렸다. <미녀는…> 에는 성형을 저급하게 여기면서도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의 보편적인 위선이 없다는 점도 좋았다. <미녀는…> 을 맹렬히 사랑할 수는 없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이유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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