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노숙 체험 텐트촌이 등장한 데 이어 무주택자들이 도심 빌딩을 무단 점거, 대통령 선거를 앞둔 프랑스에서 ‘주거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AP통신은 2일 무주택자 10여가구 50여명이 파리 증권거래소 근처에 위치한 사무용 빌딩을 점거해 생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요네즈드방크 그룹이 소유한 이 빌딩은 매물로 나와 몇 해째 비어있는 상태. 입주자들은 집세를 못내 살던 집에서 쫓겨나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던 무주택자들이나 수입이 일정치 않은 예술인들. 무단 입주자들은 지난 주 열려있는 창을 통해 들어가 벌써 욕조와 샤워시설, 부엌까지 갖추고 살고 있다.
프랑스에서 도심의 가난한 노동자나 수입이 일정치 않은 예술인들이 비어있는 주택을 무단 점거하는 ‘스콰트’는 1970년대 말부터 종종 시도되고 있으나, 이번만큼 엄청난 관심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주거권 그룹’ ‘마카크(Macaq)’ 등 단체의 주도로 진행된 이번 스콰트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100만 무주택자와 10만 노숙자 문제 해결을 압박하기 위해서 기획됐다.
스콰트 운동단체들도 건물 3층에 입주, 사무실을 차리고 ‘주택위기해결부’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건물주로부터 퇴거를 요청받았지만 대선 때까지 건물을 점거한 채 정치권에 압력을 가할 작정이다. 이번 스콰트를 기획한 마카크 측은 “몇 년째 비어있는 건물들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거리에서 얼어죽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민운동 단체인 ‘돈키호테의 아이들’이 지난달 파리 생마르탱 운하에 세운 노숙 체험 텐트촌도 파리지앵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모두 200여개 텐트가 설치됐는데, 노숙 생활을 체험해보려는 파리지앵들이 몰려들면서 주거 문제 쟁점화에 성공했다. ‘돈키호테의 아이들’은 니스 마르세유에 이어 2일 툴루즈, 리옹에도 텐트촌을 세우는 등 노숙 체험 텐트촌을 늘려가고 있다.
프랑스의 주거권 관련 시민 단체들이 이번 겨울 이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4월 대선에서 정치권으로부터 주거권 보장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이들의 활동을 의식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주거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력 대권 주자들도 주거권 문제를 대선 공약에서 주요 의제로 다룰 것을 약속하고 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유력 주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2년 안에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측근 변호사를 노숙자 해결 전담자로 임명했다. 사회당의 대선 후보 세골렌 루아얄도 ‘돈키호테의 아이들’측과 전화로 주거권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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