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은 박물관에서 가장 안전하고 양호하게 보관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연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기도 하고요.”
경기 수원시 문화관광과 학예연구사인 이달호(53ㆍ문학박사)씨는 요즘 사람 만나러 다니는 게 일이다. 본업인 문화재 연구나 지역사서 편찬 등은 잊은 지 오래다. 그는 대신 옛 문헌이나 그림, 도자기, 생활사료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들고 발품을 팔고 다닌다.
이 씨가 지금까지 기증 받은 유물은 무려 2만1,300여점에 달한다. 모두 수원시가 올해 완공하는 수원역사박물관(이의동)과 화성박물관(매향동)에 소장될 문화재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렇게 많은 유물을 박물관도 건립되기도 전에 기증받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씨가 2004년 1월 서지학자 이종학(전 독도박물관장) 선생의 유물 2만여점의 기증을 이끌어 낸 과정은 극적이다.
이 씨는 2002년 이 선생이 작고하자 부인 윤정의(80) 여사를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당시 Y대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이 선생의 유물 유치에 적극 나설 때였다. 이 씨는 당시 Y대와 중앙박물관이 고인과 친분이 있었던 원로 교수들을 앞세워 유치에 나서 위기에 처하자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윤 여사 친척을 첩자(?)로 활용, 결국 역전승을 이끌어 냈다. 이 선생의 유물 중 ‘조선 풍습ㆍ관습 관련 총독부 기초자료’는 국내 유일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일제 풍물엽서 7,000장도 최대규모다.
이 씨는 “이번 유물은 역사학자 여러 명이 평생 연구할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면서 “특히 동북공정과도 관련 있는 간도 자료는 상당한 파괴력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같은 해 5월 서예가 양택동(58)씨가 평생 모은 서화류 등 1,200여점도 유치했다. 당시 양씨는 화성시에 소장품을 기증하기로 하고 박물관 설계도 개요까지 받은 상태였다.
지난해에는 화성(華城) 건설 책임자였던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ㆍ1720∼1799) 선생의 6대 종부인 김혜정(75)씨로부터 유물 135점을 기증 받았다. 이중 채제공 선생 초상화는 최근 보물 제1477호로 지정됐다.
이 씨는 이밖에 상주박씨, 파평윤씨, 동래정씨, 전주류씨, 해주오씨 등 5개 종중으로부터도 유물기증을 약속 받았고, 이 중 상주박씨 문중이 기증한 상원군(商原君) 박유명(朴惟明ㆍ1582∼1640) 선생의 초상화도 최근 보물 1489호로 지정됐다.
수원시는 기증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수원역사박물관(이의동)과 화성박물관(매향동)을 올해 완공해 유물 전시에 들어갈 예정이다.
요즘 고문서수집가 이모씨를 설득 중인 이달호씨는 “조상의 혼과 얼이 깃든 유물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1997년 수원시 학예연구사로 출발, 2003년 상명대에서 화성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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