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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민주열사 박종철…기억하나요"/ 올 20주기 맞아 남영동 대공분실에 기념관 설립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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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민주열사 박종철…기억하나요"/ 올 20주기 맞아 남영동 대공분실에 기념관 설립 추진

입력
2007.01.0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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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대학생 한 명이 숨졌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당시 22)씨는 창문 하나 없는 4평짜리 이 작은 공간에서 물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어이없는 사인(死因) 발표는 금세 거짓임이 드러났고 부도덕한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죽음은 같은 해 6월항쟁으로 분출돼 우리 역사의 물꼬를 바꾸었다. 이후 박종철이란 이름 석자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

올해 박씨의 20주기를 앞두고 그가 스러져간 그 자리에 기념관을 세우는 방안이 추진된다. 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는 3일 “박종철 열사 사망 20주년에 맞춰 옛 대공분실 내에 기념관을 만들어 위탁ㆍ운영하는 방안을 경찰과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1976년 세워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대공 수사보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 대한 고문 장소로 악명이 높았으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1년부터는 박씨가 죽은 509호 조사실에 대한 견학이 허용됐다. 2005년 7월 이곳에 있던 경찰청 보안3과가 이전, 현재 건물은 텅 비어 있으며 본관 6층만 인권보호센터로 쓰이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인권위원회 산하에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3,000여평에 이르는 건물 전체를 인권기념관(가칭)으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추진위에 참여하고 있는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과거 대공분실에서 고문 당한 수많은 인사 중에 희생된 사람은 박종철 열사 한 사람이어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박씨를 위한 별도의 기념관 건립까지는 아니더라도 유품 등을 전시할 추모시설이나 조형물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박씨가 숨진 509호실은 공간이 협소한 데다 국가 폭력이 자행됐던 현장이어서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는 방침이다. 임국빈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장은 “10월 1차 개관을 목표로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며 “역사적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확보된 예산(5억원) 범위 내에서 국가 재산에 대한 민간 위탁 여부 등을 신중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 김학규 사무국장은 “올해 추모제가 박종철 열사가 숨진 남영동 분실에서 처음 열리는 등 기념관 건립을 위한 물적 토대는 상당 부분 갖춰진 만큼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추모일에 맞춰 2004년 펴낸 <박종철 평전> 개정판을 출간하고, 박씨의 일대기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평전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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