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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새해의 시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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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새해의 시간 철학

입력
2007.01.0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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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읽다가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구절을 맞닥뜨렸다. 어디에서 어디까지라는 말은 모두 시간의 한 점과 더불어 사용되는 말이 아닌가. 영원이 어떻게 한 점처럼 묘사될 수 있다는 말인가?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어제가 없었던 날이 있었을까? 그리고 내일이 없는 날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말은 시간에 시작과 끝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최초의 날은 어제가 없었을 것이고, 최후의 날에는 내일이 없을 것이다.

● 새로운 생각이 내 인생 혁명의 조건

시작도 끝도 없는 원운동처럼 시간은 영원한 반복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봄이 가고 여름 오고 또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지만 이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세 개의 바늘이 원을 그리는 시계처럼 시간은 그렇게 끝없이 오고 간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물리학> 이라는 저술에서 다루었다. 시간을 물리적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시간을 인간의 실존과 더불어 생각했던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는 존재라는 개념과 더불어 시간의 각 계기의 존재양상에 대해 말했다. 과거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했던' 것이고, 미래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과거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미래는 우리의 기대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진정한 시간적 존재는 현재 뿐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지금이라는 순간 뿐이다. 이 순간에는 길이가 없다. 길이란 수학적으로 말하면 두 개의 점 이상이 연결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재는 하나의 점일 뿐이며, 거기에 붙어 있는 앞뒤의 점은 기억과 기대일 뿐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일 뿐이다. 그 시간이 다하면 육체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바로 점과 같은 찰나 뿐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에 충실한다는 말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길 뿐인 셈이다. 시간은 아낄 수가 없다. 그저 지금을 잘 사용하는 길밖에 없다.

혁명을 의미하는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말은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공전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인다. 새로운 정치적 변화의 분출과 항상 반복되는 원운동이 동일한 단어로 표현된다. 사실 우리는 반복되어 맞는 시간을 새해라고 하지 않는가?

● 새해에는 새로운 탄생을 생각하자

시간은 흐른다. 그런데 그 시간을 새롭게 맞이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질 때 우리의 시간이 새로워질 수가 있다. 새로운 생각이 내 인생의 혁명의 조건이 된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일 수 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질곡과 고통 속에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시간에 시작과 끝이 있는지, 시간은 영겁으로 회귀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한 쪽을 믿을 수는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지금의 시간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야 한다. 연말에 죽음을 당겨 생각해 보았다면, 이제 새해의 시작에는 나의 삶의 새로운 탄생을 만들어 볼 일이다.

김선욱ㆍ숭실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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