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산업은행 본점. LG카드 입찰제안서 제출 최종마감을 앞두고 입찰서류를 손에 들고 있던 신한금융지주 실무책임자에게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총 7조원이 넘는 인수경쟁에서 회장이 최종 지시한 금액은 주당 6만8,410원. 이후 경쟁사를 겨우 70억원 차이로 따돌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0원 단위까지 적혀있는 이색적인 입찰 금액이 LG카드 인수에 결정적인 변수가 됐음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은행장을 세 번 연임한 신한금융지주 라응찬(68ㆍ사진) 회장은 이로써 굿모닝증권, 조흥은행에 이어 3번째 빅딜을 성사시켜 ‘금융계의 살아있는 전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이는 결국 올해의 ‘CEO가 뽑은 CEO’에 라 회장이 선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라 회장이 임원들이 의논해 결정한 금액에 1,000원을 더 올리는 과단성을 보여 인수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라 회장은 예의 겸손한 어투로 “큰 단위는 임원들이 정했고, 나는 미세조정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미세조정의 비결은 인수금액 5자리의 합이 ‘9’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혀 라 회장의 ‘갑오패’ 배팅이 또 다른 화제가 됐다. 라 회장 주변 인사들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자라는 1%는 하늘에 맡기고 겸손하게 기다리는 라 회장의 성품이 잘 묻어나는 일화라고 말한다.
1982년 자본금 250억원에 임직원 279명, 점포 3개로 시작한 신한은행은 24년 만에 한해 순이익만 2조원에 달하는 종합금융지주회사로 탈바꿈했다. 설립 당시 1,800억원이었던 총자산도 217조원(3분기 말, 지주회사 기준)으로 불어났다. 금융사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001년 13.83%에서 20.88%로 상승해 규모와 질 모든 면에서 우량은행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은행들이 속속 외국자본에 팔리거나 다른 은행에 인수합병 된 우리나라 은행역사에서 소규모 민간자본으로 시작한 은행이 20여년 만에 만들어낸 믿어지지 않는 성공사례다.
신한금융지주의 성공 역사는 라 회장을 제외하곤 얘기할 수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김이 거세던 80년대 라 회장은 자신의 금융인생의 후견인이었던 현직 부총리의 인사 청탁을 한마디로 거절하는가 하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군부 실력자의 청탁에도 굴하지 않는 등 수많은 일화를 남기며 신한은행을 외풍에서 지켜냈다. 시중은행들이 1조~4조원까지 악성채권에 짓눌렸던 1999년 대우사태 때도 라 회장의 이 같은 강단 덕에 신한은행의 대우 관련 여신은 1,700억원에 불과했다. 당시 정부 당국의 대출지시에 휘둘리던 시중 은행들과 달리 신한은행은 기업의 부실대출 조기경보와 부도연체관리 등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기업여신관리시스템을 도입해 대출의 원칙을 세웠던 것이다. 은행 문턱이 턱없이 높던 90년대 초반 라 회장은 고객중심 영업마인드를 강조하며 국내 최초로 고객만족센터를 세웠다. 이제는 은행권의 대표적 경영지표로 활용되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나 ROE 같은 용어들도 라 회장이 업계에 보급시킨 개념이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가는 라 회장의 경영감각은 이제 세계로 향하고 있다. 라 회장의 꿈은 신한금융지주를 세계적 금융그룹으로 키우는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과 조흥은행 인수에 이어 1,000만 회원을 가진 LG카드를 인수하면서 그 꿈에 한발 더 다가섰다. 최근 금융전문가와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향후 한국금융산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기관으로 약 40%가 신한금융지주회사를 꼽았다.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고희를 2년 앞둔 백전노장 라 회장의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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