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정유업계의 경영 환경은 ‘시계 제로’ 상태나 다름 없었다. 국제유가가 한때 사상 최고인 배럴당 75달러(서부텍사스 경질유, WTI 기준)까지 치솟았다가 8월 이후 50달러대 후반까지 떨어지면서 수익률도 출렁거렸다. 국제시장에서 원유 정제마진은 축소되는 반면 크랙마진(벙커C를 고부가가치인 경질유로 만들 경우 남는 이익)은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는 2006년 영업이익 1조원대를 달성하는 호성적을 냈다. 그 중심에는 ‘눈 밝은’ 최고경영자(CEO)인 신헌철 사장(61)이 있다.
신 사장은 변화무쌍한 시장 흐름을 간파, 올 초부터 수익구조 다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결과 석유부문에서 정제 마진 감소로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해외 석유자원 개발과 에틸렌 등 화학산업, 윤활유의 판매에서 약진, 손실을 벌충할 수 있었다.
신 사장은 “내수 시장은 포화상태이므로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 중국 인도네시아에서의 석유제품 판매가 급신장했다. 내수 중심 기업이었던 SK㈜가 올 3분기 수출이 전체 매출의 50%를 넘어섰다. 글로벌기업으로 본격 도약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2004년 SK㈜ 사령탑에 오른 신 신장은 정유업계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마케팅 전문가. 72년 유공(SK㈜의 전신)에 입사, 34년 동안 주로 정유 영업 분야에서 일해 왔다. 95년 SK텔레콤의 수도권마케팅 본부장, 2002년 SK가스 대표이사를 거치면서도 탁월한 영업능력을 보여줬고, 2004년 친정인 SK㈜ 사장으로 복귀해 눈부신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신 사장은 취임 첫해 사상 처음으로 영업 이익 1조원을 돌파(1조6,000억원), 업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정유업계의 호황이 뒷받침됐지만, 2003년의 영업이익(6,700억)에 비하면 실로 괄목상대할만한 실적이었다. 이어 2005년과 2006년까지 내래 3년간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신 사장 재임 동안 SK㈜는 다각화한 사업 영역과 수익구조 측면에서 외부 환경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반석 위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시장흐름을 정확히 읽고, 남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부지런히 뛰는 신 사장 특유의 근면한 리더십에 기인한 바 크다.
신 시장은 젊은 시절 정유 판매 현장을 누비거나, 통신 회사 간부로 휴대폰 영업을 할 때도 새벽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가 옷만 갈아입고 출근하기가 예사였다. 때론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잠을 자며 업무를 본 것으로 유명하다.
경영자로서의 신 사장의 미덕은 부지런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심성을 어루만지면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감성 경영에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이후 그룹 이미지 실추로 SK㈜ 등 계열사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졌을 무렵, 신 사장은 사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 직접 직원들에게 편지를 써서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며 힘을 북돋우기도 했다.
신 사장은 세밑인 12월 27일 저녁 서울 서린동 본사 사옥 강당에서 직원들을 위해 공연을 펼쳤다. 자신이 직접 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마당극 형식으로 직접 각색해 임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관객으로 참석한 직원들을 향해 한해 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였다. 이날 수익금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됐다. SK㈜ 관계자는 “신 사장은 불도저같은 추진력과 따뜻한 감성으로 지난 3년간 회사를 양적,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켰다”며 “지난해 인천정유 인수에 성공, 올들어 SK인천정유로 새로 출범시켜 빠른 정상화의 길로 이끌고 있는 점도 눈에 뛰는 업적”이라고 말했다.
■ 약력
1945년 경북 포항 출생
1964년 부산상고 졸
1972년 부산대 경영학과 졸
1972년 유공(옛 SK)입사
1989년 SK경영기업개발실 부장
1991년 SK가스 영업담당 이사
1995년 SK텔레콤 수도권 본부장(상무)
1998년 SK텔링크 대표이사 전무
2002년 SK가스 대표이사 부사장
2004년 SK㈜대표이사 사장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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