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서울시와 문화재청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서울시와 문화재청

입력
2007.01.01 23:48
0 0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인 파크 애비뉴 42번가 초고층 빌딩숲 사이에는 6층짜리 건물이 있다. 뉴욕의 관문인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다. 이 건물은 역사라고 해봐야 1913년에 완공됐으니 100년도 채 안됐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 같지도 않지만 1976년 국가사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 지정됐다.

땅값이 만만치 않은 곳에서 이 건물이 보존될 수 있기까지는 막대한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50년대 맨해튼 땅값이 치솟자 건물 소유주인 뉴욕 센트럴 철도회사는 이 건물을 헐고 55층 건물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설계가 완성되고 재건축을 추진하기 직전인 1967년 사적보존법이 생기면서 발목이 잡혔다. 사적보존위원회가 이 건물이 30년 이상 된 대표적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개발 불허처분을 내린 것이다.

철도회사('펜 센트럴'로 개명)는 즉각 '정당한 보상없이 재산을 수용하고, 적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재산을 침해한다'며 뉴욕시를 상대로 800만달러(약 7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0년에 이르는 길고 긴 법정싸움 끝에 연방대법원은 1978년 '사적보존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시민에게 유익하다'며 뉴욕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3만862㎞에 이르는 철도를 경영하는 미국 최대의 철도회사는 재건축 무산에 따른 경영악화로 파산하고 말았다.

최근 몇 달동안 서울시 신청사 추진을 싸고 서울시와 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이 벌이고 있는 논란도 본질적으로는 문화유산 보존과 도심 개발의 다툼이다. 문화재위원회가 내세우는 '덕수궁 경관보존'은 궁궐주변을 쾌적하게 유지해 공익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라면 서울시 신청사 건립은 시민의 재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양측의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일처리하는 과정은 원칙도 없고 엉성하다. 우선 서울시 설계안을 세번이나 통과시키지 않은 문화재위원회는 설계안이 위압적이라고 할 뿐 납득할 만한 어떤 설명이나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주변에 고층건물이 즐비한 데다, 법대로 할 때 앙각규정(사적지 주변 건축물에 대한 높이 제한)을 어긴 것도 아닌데 무슨 경관을 어떻게 훼손한다는지 이해가 안 된다.

문화재위원회가 권위적이고 자의적이라면 서울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재건축 허가를 얻자마자 문화재위원회 심의도 받기 전에 건물부터 덜컥 헐어버리는가 하면 퇴짜맞은 설계안을 배짱 좋게 다시 올렸다. 민간기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 결과 인근 빌딩을 빌려쓰고 있는 서울시는 하루에 1,000만원씩 혈세를 축내고 있다. 또 설계 변경비용만 70억원이 들어갈 판이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기회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어이가 없다.

도심에서 문화재보존과 개발은 조화시키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개발위주로 갈 땐 문화재 파괴가 불 보듯 뻔하고, 그렇다고 보존만 강조하면 도심엔 문화재와 슬럼가만 남을 것이다.

뉴욕의 사적보존법은 시민들에게 교육ㆍ복지혜택을 주면서 동시에 주변의 토지가치를 높이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그 목적과 효과가 명확할 때에만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말로도 풀이된다.

서울시는 2월에 신청사 건립설계를 다시 올린다는 계획이다. 기왕 늦어진 김에 공청회라도 열어 무엇이 진정한 공익인지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향후 도심재개발과 문화재보존에 대한 공정한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최진환 사회부차장대우 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