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학살 '안팔 작전'은 미궁으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범죄혐의는 두자일 학살사건이다. 1982년 7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60㎞ 정도 떨어진 시아파 거주 두자일 마을의 주민 148명을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후세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3년 만인 그 해 7월 8일 두자일 마을을 방문한 후세인 차량 행렬이 괴한의 총격을 받은 것이 발단이 됐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전쟁 중이었고, 집권 초기 정권 안정을 위해 정적 숙청 작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던 후세인은 이 암살사건을 반대파인 시아파 정치세력이 조직적으로 꾸민 것으로 단정하고 범인 색출에 나섰다. 이라크 정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을 전체 주민 600여명을 사막의 수용소로 연행해 고문을 자행한 뒤 겨우 2주 동안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 무려 148명을 처형했다.
두자일 학살은 그의 잔혹한 철권 통치 기간 저지른 비인도적 범죄들의 서막에 불과했다. 후세인은 이 사건을 포함해 87~88년 쿠르드족 수천~1만명을 화학무기로 학살한 ‘안팔(전리품) 작전’ 지시, 이란ㆍ이라크전에서 화학무기 사용, 90년 8월 쿠웨이트 침공, 91년 1월 시아파 봉기 무력진압, 집권 30년 동안 반체제 인사 살해 등 모두 8가지 혐의에 대해 기소된 상태였다.
이중 특히 후세인 시절 최대의 학살인 안팔 작전에 대한 재판이 4개월째 진행되면서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갖가지 증거가 제시되기 시작했는데 사형이 집행됨에 따라 사건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쿠르드족 주민이 후세인의 처형에 기쁨을 표시하면서도 “완전한 심판이 내려지지 않았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자일 학살을 지시한 혐의로 처형됨에 따라 후세인은 반(反)인도 범죄로 사형당한 극소수 통치자 중 하나가 됐다. 역사적으로 독재자가 재판을 받은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자국 내 민중봉기나 쿠데타 등으로 정부가 전복된 경우를 제외하면 사형 판결이 내려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학살 등 국제법에 어긋나는 비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국내 재판소가 아닌 유엔 국제전범재판소의 재판을 받는 것이 보통이어서 미군 점령 하 후세인 재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79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실권한 뒤 정적 살해 혐의로 사형을 당했으나 이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89년 10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가 민중봉기 이후 학살 등의 혐의로 사형을 당했지만, 사형을 언도한 특별 군사법정의 재판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즉결 심판에 가까웠다.
대부분 다른 독재자들은 사형 집행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숨졌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콩고의 독재자 로랑 카빌라 등은 반대파나 민병대 등에게 사살됐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은 전범재판이 진행 중이던 올해 3월 유엔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장 캄반다 전 르완다 총리는 학살 혐의로 유엔 전범재판에서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는 미국 법원에서 마약 운반혐의로 40년형을 받았지만 비인도 범죄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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