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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1> ㈜영도벨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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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1> ㈜영도벨벳

입력
2006.12.3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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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남구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10분 정도 자동차로 달리면 구미 제3산업단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단지내 8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LG필립스LCD, 효성, 새한 등 대기업 공장들이 빼꼭히 들어선 가운데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빈 공간들이 보인다. 대기업들이 직원용 주차장 등으로 임대해 쓰고 있는 이 공간들은 한때 잘 나가던 섬유 업체들이 자리했던 곳.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 지금은 침체산업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한국 섬유산업의 한 단면이다.

이런 분위기와는 딴 판으로, 밀려드는 주문에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하는 업체가 있다. 국내 유일의 ‘벨벳’ 생산업체인 ㈜영도벨벳이다. 벨벳이란 표면에 연한 섬유털이 촘촘히 박혀있는 옷감으로 ‘비로도’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섬유제품이다.

종업원 100여명, 매출액 380억원(2006년 추정) 규모의 이 중소기업은 현재 14건이나 되는 세계적인 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기술력을 앞세운 영도는 2001년 벨벳부문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선 데 이어 2004년 수출 1,000만 달러, 2006년에는 2,000만 달러를 돌파, 정부로부터 각각 철탑과 동탑 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산업자원부로부터 한국의 세계일류 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도벨벳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세계가 무대인 대표적 한국기업중 하나로 전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80%를 넘는다. 이탈리아의 <조르지아 아르마니> 미국의 <앤클라인> 스페인의 <자라> 등 세계 최고급 패션 브랜드들이 영도벨벳 제품을 쓰고 있다. 두바이 등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고급 벨벳 시장의 대부분이 이 회사 제품이다. 특히 한국산 벨벳이불과 옷감은 이 지역 신부들이 지참해야 하는 혼수 필수품으로 꼽힌다. 우아한 색상과 부드러운 감촉, 접히거나 눌려도 눕지않는 표면 털의 특성, 뛰어난 내구성 등이 영도벨벳의 세계적 경쟁력이다.

‘한물 갔다’는 섬유분야에서 영도벨벳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사람은 류병선(65) 회장이다. 류 회장은 1960년 남편(고 이원화 회장)과 함께 기계 4대를 빌려 창업했다. 처음에는 방한화용 털실을 만들다가 털이 있는 벨벳직물 사업으로 이어갔다. 당시 일제 벨벳이 인기를 끌었는데,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것. 류 회장은 “제대로 된 기계설비가 없이 솥에 불을 때는 재래방식으로 염색하는 등 숱한 어려움 끝에 벨벳 생산에 성공하게 됐다”며 “당시의 어려움은 한달 동안 이야기해도 다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의 개발 경험은 영도벨벳이 기술 제일주의를 모토로 40여년간 벨벳생산만을 고집하는 계기가 됐다.

영도벨벳은 1974년 중동지역에 처음으로 벨벳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중동에서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고 독자브랜드인 ‘쓰리 이글(Three Eagle)은 세계 벨벳시장에서 점차 명성을 얻어 나갔다. 하지만 시련은 곧 찾아왔다. 공장을 더 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 것인데 그 이유는 일본 업체들의 견제였다. 영도가 성가를 얻어나가자 일본의 벨벳원료(펄프에서 뽑아낸 일제 아세테이트 원사) 제조업체들이 공급물량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의 위기는 그러나 영도벨벳에게는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하는 결정적 전기가 됐다. 일본 기업들이 공급물량을 제한하기 시작한 80년대 초부터 ‘이대로 일본에 매일 수 없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일제 원료 대신 국산 폴리에스터 원사를 쓰는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전사적인 혼을 담은 노력은 20년 가까이 지속됐고 급기야 지난 2001년 순수 국산 기술의 벨벳 원료가 개발됐다.

오랜 시간을 쏟아부은 만큼 개발된 제품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원가는 기존의 4분의 1수준으로 낮지만 품질은 일본 제품과 비교되 되지 않을 만큼 뛰어난 것으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 ‘폴리 벨벳’으로 이름 붙인 이 제품은 한 번만 입어도 털이 눕는 기존 벨벳의 단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드라이 클리닝만 가능했던 벨벳을 세탁기에 넣고 물빨래까지 할 수 있도록 실용성까지 강화됐다. 제품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영도벨벳의 무대는 바로 세계였다.

그동안 물론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특히 외환위기 때는 쓰러지기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1995년 직물을 짜는 제직부터, 염색 가공을 거쳐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해외 리스를 통해 도입한 것이 어려움의 근원이었다. 외환위기로 원ㆍ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갚아야 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류회장이 경영전면에 본격 나서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 남편은 회장으로, 현 류회장은 사장으로 체제를 갖추고 위기돌파에 나섰다. 대구공장?물론 개인 땅과 아파트까지 처분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빚을 줄여 나가는 극약처방도 불사했다. 4년여 각고의 노력은 결국 2004년 워크아웃에서의 졸업으로 이어졌다. 대대적인 자구노력과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 주거래은행(신한 은행)측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영도벨벳의 화려한 재기에는 세계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 폴리 벨벳 덕이었다.

류 회장은 워크아웃 상태에서도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서도 각종 해외 전시회에 참가, 직원들과 함께 세계 벨벳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꼼꼼히 살폈다. 2000년에는 벨벳에 그림을 그려넣은 벨벳벽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 홈인테리어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웰빙흐름을 반영해 천연 염색 처리한 신제품도 내놓았다.

현재 영도벨벳의 가장 큰 효자상품은 벨벳벽지. 회사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는 이 제품은 벨벳 특유의 보온성과 단열성을 지닌 데다,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표면질감을 연출할 수 있어 고급 인테리어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있다. 류 회장은 “벨벳의 응용 분야를 패션의류 제품부터 커튼 침구류 등 홈인테리어, 첨단 산업용 소재까지 다양화하고 있다”며 “세계 최고 기업답게 1억달러 수출도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칠전팔기 '오뚝이' 류병선 회장

"섬유도 연구하면 첨단산업이죠"

"사장의 '사'자는 죽을 사(死)자입니다. 사선(死線)을 넘나들 만큼 각오가 남다르고 책임도 무겁습니다."

㈜영도벨벳 류병선 회장(사진)에게 회사는 곧 목숨이다. 외환위기가 닥쳤던 97년, 남편 혼자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잠시 가정 일에 전념하던 류회장은 경영일선에 전격 나섰다. 집안이고 가족이고 둘째였다. 남편마저 어려움에 처해 홀로 회사를 책임기게 된 이후에는 그야말로 회사의 운명과 자신의 목숨이 다를 수 없었다.

"1960년대 남편과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빈손으로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처음처럼만 하자, 사람이 해서 안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는 각오로 달려들었지요."

그저 회사를 우선 살리고 보자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한지 4년. 이제 류회장은 환하게 웃을 수 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2004년, 류회장은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에게 큰 절을 올렸다. 그 해 30%의 특별보너스도 지급했다. 지난해에는 70%, 올해에는 무려 130%의 성과급을 줄 정도로 회사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요즘 제조업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라는 류 회장은 "섬유산업도 연구만 잘하면 첨단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 회장은 이어 "우리회사 제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아직 소량의 초고가 제품만을 생산하는 이탈리아나 독일업체 비해 가공측면에 조금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더욱 기술개발에 주력해 명실공히 세계 넘버 원, 세계를 무대로 뛰는 대표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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