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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문화계 주목 이사람] <1> 뮤지컬 배우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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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문화계 주목 이사람] <1> 뮤지컬 배우 김보경

입력
2006.12.31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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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순간에 주인공이 돼 버려 쑥스러워요. 그 때 그 때 충실했을 뿐인데….” 깜짝 스타의 말 같기도 하다.

“뮤지컬 빅뱅이라는 현재 상황을 보면, 내가 참 운이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다> 나 <미스 사이공> 의 주역이 제게 온 걸 보면요.”그러나 그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실력과 시대적 요청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젊은 뮤지컬 여배우로서 최고의 미덕을 꼽으라면 단연 노력이겠죠. 오디션을 보지 않는 뮤지컬에서 러브 콜이 왔다고 만족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야무지다. 노래도, 춤도 다 잘해야 하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배우 김보경(26)에게 존재의 이유다. ‘노래와 춤이 다 되는, 드문 배우’라는 찬사가 팬 카페처럼 따라 다닌다.

지난해 6~10월 출연한 <미스 사이공> 에서 비련의 여인 ‘킴’으로, 앞서 2004년 8월~2005년 4월 출연한 <아이다> 에서는 ‘네헤브카’로. 최근 쉴 틈없이 주역으로 잇달아 출연한 두 편의 큰 무대는 그를 결국 쓰러뜨리고 말았다. 이전까지는 한달 공연이 최장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3개월째 쉬면서 원기를 회복중인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 몸살 감기가 습격했다. 지난해 12월 19일 차범석연극재단 발족식에 나와서 고인의 <산불> 을 뮤지컬화한 <댄싱 섀도우> 에 나오는 아리아를 불러 달라는 영광스런 요청도 물리쳐야 할 정도였다. 최근 두 작품에서 모두 죽는 역으로만 나와서 그럴까 하는 얄궂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이를 꼭 끌어 안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절규하는 베트남 여인 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애절한 아리아가 가슴을 파고 든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넘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는 무대에서 실증해 보였다. 집에 오면 몸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싸이월드 등에 마련된 사이트 방명록에 자취를 남긴 네티즌 숫자가 하루에 100명은 족히 넘는 걸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싶었다. 늘씬한 뮤지컬 배우들의 수풀을 뚫고 솟아 오르는 그의 소프라노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영기(aura)이고, 동시에 스스로를 추스르는 힘이었다. <유린 타운> <렌트> <노틀담의 꼽추> <갬블러> 등에서의 열연은 오늘을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지방 출신이라는 자의식 같은 건 없었어요. 아니, 오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생각으로 달려왔으니까요.”

대전에서 태어나 너댓살부터 부모가 즐겨 듣던 트로트를 따라 부르더니 초등학교 시절에는 가요가 특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전무용과 발레를 배웠으나 중학교 2학년이 되자 그만둬야 했다. 1남 5녀를 키우는 집에서 무용 수업은 경제적 부담이 클 뿐더러, 비전도 없다는 부모의 의견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한바탕 울고 그만둬야 했지만, 몸에 익었던 무용 솜씨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나니 큰 힘이 됐다.

혜천대 성악과에 입학했지만, 뮤지컬 곡으로 목청 연습을 대신하던 별난 음대생이었다. “<미스 사이공> 애니메이션으로 주제곡을 접하면서 뮤지컬 배우들의 음반을 열심히 들었죠. 성악과를 택한 것은 발성 때문이었거든요.” 졸업하던 2003년, 곧 바로 서울로 올라와 신시뮤지컬컴퍼니를 찾았다. 큰 언니를 통해 알게 된 뮤지컬 배우 전수경의 조언이 컸다. “대학에 진학할 때 성악과를 선택한 것, 졸업 후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 뮤지컬 전문 극단에서 하는 오디션을 본 것이 모두 그 때문이었어요.” 마침 뮤지컬 <렌트> 로 익숙해져 있던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보는 오디션에 도전했다. <인어 공주> 등 어린이 뮤지컬로 데뷔한 그는 ‘주머니속의 송곳’이었다. 2시간 40분 무대공연 내내 노래를 해야 하는 <미스 사이공> 을 2년만에 거머쥐었다. 작은 기적이었다.

뮤지컬 배우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장기라면? 금방 답이 돌아온다. “모르는 춤, 못해 본 노래요. 앞으로 제가 할 춤과 노래가 모두 장기예요. 어렵나요?” 2007년 1월 <미스 사이공> 지방 공연을 시작으로 밝아 올 그의 새해. 5월부터는 <댄싱 섀도우> 연습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많은 그는 그렇게 미지의 산을 넘고 있다.

● 김보경

1982년 대전 출생

유성초등학교, 유성여중, 유성여고

혜천대 성악과

신시뮤지컬컴퍼니 소속. 뮤지컬 <미스 사이공> <아이다> <인어공주> <사운드 오브 뮤직> <유린타운> <렌트> <노틀담의 꼽추>

● 내가 본 김보경

체격은 작지만 열정은 메머드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ㆍ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김보경은 키가 작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장기 공연이라도 하게 되면 혹시 중도에 힘에 부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무대에서 만나는 그녀의 이미지는 결코 防層?약하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옹골차고 다부지다.

김보경의 매력은 바로 그 녹록치 않은 내적 에너지에 있다. 어느 무대에서건 그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 그 작은 몸에 꾹꾹 눌러 담은 용수철을 단번에 열어 젖히듯 폭발시킨다. 덕분에 악바리 같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노틀담의 꼽추'에서 석고상으로 나왔을 때도 은근히 주목받았지만, 그녀가 본격적으로 뮤지컬 애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아이다'부터였을 것이다. 이집트로 끌려온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에게 예복을 건네며 예찬의 노래를 부르는 네헤브카역이었다. 짧은 등장에도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를 마니아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 때 그녀의 무기는 감정의 집중과 내적으로 응집된 '에너지'였다.

2006년을 '김보경 발견의 해'로 부르는 이유는 역시 '미스 사이공'에서의 주연 발탁과 그로부터 공연 기간 내내 유지해 온 한결같은 열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배우로서 그녀의 음색은 사실 한계가 있다. '미스 사이공'의 공연 초반기 킴의 노래가 앵앵거리듯 들린다는 지적도 심심찮게 등장했었다. 아이 목소리 같은 그녀의 보이스 컬러 탓이다.

하지만 공연이 지속되면서 배우 김보경은 자신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찬사로 바꿔놓았다. 감정의 폭이 넓은 뮤지컬 넘버들을 적절한 강약 조절을 통해 변화를 꾀한 것도 주효했지만, 무엇보다 캐릭터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열정적인 연기가 그녀만의 킴을 창조해내는데 큰 힘이 됐다. 불타오를 듯 사랑에 빠진 17살 소녀에서 아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결심하는 가련한 미혼모까지, '김보경표 킴'의 연기와 에너지는 외국 연출진으로부터도 찬사를 이끌어냈다.

20~30대 여성 관객이 많은 탓일까, 우리 뮤지컬 공연가에서 멋진 남자 배우는 줄이어 나타나고 있지만 주목받는 여자 배우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그녀의 발견은 가뭄 속 단비 같다. 스스로의 핸디캡을 특유의 열정으로 극복했듯이 앞으로의 무대에서도 머무르기보다 꿈틀대는, 정체되기보다 변화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7년, 김보경의 또 다른 행보가 기대된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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