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 주자간 공방이 표면화했다. 29일 강재섭 대표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원희룡 의원 등 대선 주자 4명을 초청해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연 만찬간담회 자리에서다.
간담회의 원래 취지는 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 승복과 공정 경쟁을 약속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시작하자마자 손 전 지사가 이 전 시장측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바람에 냉랭한 분위기가 흘렀다.
손 지사는 “오늘 모임은 정권 교체를 위한 단합의 자리지만 쓴 소리를 하겠다”며 작심한 듯 준비해 온 메모지를 꺼냈다. 그는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자들의 의원 줄 세우기가 횡행하고 있다”며 “이런 구태가 반복되면 두 번의 대선실패라는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 주자들의 당내 세 확장 경쟁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특히 “일부 최고위원이 줄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부가 단합이나 공정 경선이란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정 캠프의 특정 최고위원의 이름이 (의원 줄세우기에) 자주 거론된다”고 지적했다. 손 지사측은 문제의 최고위원이 이재오 최고위원이라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그 최고위원은 당원과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고, 특정 주자의 참모장 역할을 내놓고 하든지 최고위원 역할을 하든지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전 지사가 이 전 시장에게 포문을 연 것은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이 전 시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뚜렷이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약 90분간 진행된 간담회가 끝난 뒤 이 전 시장은 손 전 지사의 발언에 대해 “일반적 이야기 아니냐. 그런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짐짓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 전 지사는 “당을 위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고 말했고, 박 전 대표는 “손 전 지사의 말씀을 당 지도부에서 잘 참고하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오 최고위원은 이 날 지방대 특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손 전 지사의 발언을 전해 듣고 “(줄 세우기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유언비어”라고 반박했다.
이 날 간담회에서 대선 주자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경선 방식과 시기 조정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권영세 최고위원이 “경선 룰이 같다면 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 전 시장은 “시기 문제는 다음에 이야기 해야 될 것”이라고 말해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았다. 원희룡 의원도 “저 쪽(열린우리당) 하는 것 봐 가면서 결정하자”고 했다.
강 대표는 또 “후보들끼리 비방은 하지 말 되 서로를 검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이에 원 의원은 “여당은 없는 것도 만들 수 있어 우리끼리 검증하는 건 바람직하다”고 찬성했고, 이 전 시장은 “인터넷엔 내 이름의 명은 일본의 명치유신에서, 박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의 박을 땄다며 내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라는 허위사실도 돌아다닌다”고 했다. 황우여 사무총장은 “그런 지저분한 일은 직접 하기 어려우니 당에 맡겨 달라”고 말했다.
간담회에서 강 대표는 대선 주자들에게 “당직자들을 너무 끌어들이지 말고, 공정 경쟁과 경선 승복을 약속해 달라”고 다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고, 나머지 세 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고 나경원 대변인은 전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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